내 안의 당신을 지키기 위한
더 이상 놓지 않고 싶은 사람들의 노래
내면에 복잡한 들꽃을 촘촘히 피워내는 사람일수록 무엇 하나 쉬이 지나치기 어려워한다. 깊숙이 퇴적된 회갈색 꽃들은 몸 밖으로 빠져나와 활기찬 공명의 빛깔로 세상을 밝히는가 하면, 그저 그렇게 하릴없이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흐르기도 한다. 심장 한 켠을 울리는 아릿한 풍금 소리처럼, 난해한 심정을 꼭 닮은 이야기를 만난 적 있다. 한때 마음에 칼날이 쑥 들어오듯 심적 생존을 저릿하게 만들었던 노랫말.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내 속에서 대다수의 나를 상징하는 투명한 가시들은 들숨과 날숨의 눈을 피해, 수없이 저들끼리 찔러대기를 반복하며 상처를 내곤 했다. 그 누구도 명령한 적 없고 강요한 적 없는, 그야말로 순결한 자아가 주체성으로 뻗어내는 괴로움의 아우성 같이. 가삿말 중 당신의 쉴 곳이 없다는 대목을 보면 화자가 겪었을 시름의 심도를 어렴풋이나마 체감할 수 있다. 스스로 물어뜯고 괴롭히다 못해 번잡하게 어질러진 내면의 민낯은, 결국 가깝고도 소중한 당신이라는 소실점으로 향했으니까.
남들과 달리 드넓지 못해 초라한 마음이 못내 미안해지고, 차마 죽일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죄스럽게 여겨지고, 끝내는 너무 사랑하여서 놓아준다는 말처럼. 자신을 이기적이고 나약하면서도 비좁은 그릇의 인간으로 치부하고야 마는 심성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우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는 태풍 같은 죄책감까지 이끌어내며 일어설 수 없을 만큼의 상실감을 손아귀에 쥐어주기도 한다.
나는 이토록 결핍된 사람이라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내 옆에 머문다면 당신은 더 힘들어질 거야. 그래 맞아 나는 이것밖에 안 돼, 그러니까 이제... 더 좋은 사람을 찾아서 떠나가. 제발 가 줘. 너를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상대를 위한다는 고념은 결국 자신이 더 이상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함이다. 사랑 앞에서 그만 비참해지고 싶은 자기 방어의 일종이다. 상대는 그러한 결말을 원한 적 없는데도, 맞잡은 손을 놓아버린 건 당신이었으니까.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남이 나에게 주지 않은 생채기까지 긁어모아 내가 나에게 흩뿌리고 차디찬 땅굴로 잠식해 버리는. 흡사 무너지기 시작한 모래성 속으로 은신해 감정의 씨앗을 끊는 잔혹한 자해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본인의 신념처럼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피해로 각인될 거라 생각한다면, 평생을 혼자의 몸으로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황천길의 문턱까지 처절하게 떠나면 된다. 그런데, 당신이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버거운 당신이야말로 사람 없이, 애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새카만 밤하늘을 수놓은 노란 조각달에 홀려 그득하게 흩날리는 사랑의 솜털 없이, 오직 당신만을 향하는 달콤한 단꿀의 문맥 없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정녕 있냐는 물음이다. 당신은 사랑할 자격을 충분히 갖춘, 단단한 사람인데 왜 스스로 깎아내리느냐는 안타까움의 호소와도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에도 기본의 전제 조건이 있다. 더 나아질 개선의 여지와, 누군가의 손길을 받아들일 의향을 장착했냐는 것. 희망이 없는 사람은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버텨내듯이 하루를 살아가겠지만, 그 삶 역시 본인이 그려낸 가상의 어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어떤 누구도 당신이 아프길 원한다거나 슬픔에 눈물짓기를 고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악스럽게 느껴질 만큼 잘 살아남기를 바랄 것이다. 여기서 어떤 누구란 나에게 소중한,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이다.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이들의 불쾌한 시선이 내 삶에 관여하게 두지 않는 것이 비로소 온당하다.
사랑이라는 막강한 불변의 천편일률적 감정에 휘둘리다가도 제가 가진 아픔이 너무나 커서, 한낮의 꿈으로 치부하며 등을 돌리는 모습은 크나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상대에게로 조심스레 다가가려던 아름다운 사유가 갈 곳을 잃은 채 지레 겁을 먹는 듯한 눈망울로 뿜어질 때면 주변의 다른 심장들을 시큰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한꺼번에 맞이한 둘의 실종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포기한다는 행위는 과한 배려로 착색되는 경우가 있다.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희생생이었는지, 몸소 두려움과 책임감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회피성 도주는 아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방감은 일시적 탈피일 뿐, 사람은 금세 외로움에 사무친다는 습성을 지녔으므로.
현재를 사는 눈으로 바라보는 훗날의 미래란, 어쩌면 홀로 짐작하는 일어나지도 않은 결말일 뿐이다. 불안에 둘러싸여 신중한 나날을 이겨내는 나와 같은 그들이, 이따금 뒷일까지 생각 않는 무언의 도전을 내지를 수 있다면 좋겠다. 손가락 가장 짧은 마디만큼의 용기가 낳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따르는 삶은 가끔 잊지 못할 추억을 꾸려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 알 수 없음으로부터 파생되는 열락한 극복의 만찬을 한 번쯤 즐겨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