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라이프

되돌리지 않아도 괜찮아.

by 블루나잇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가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방송에서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뇌리에 꽂히는 장면들이 몇 가지 있다. 참가자들이 일구어 온 가슴 절절한 사연, 트레이너와 마스터 군단의 달고도 씁쓸한 평가, 인생에서 단 한 번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뜨거운 꿈의 무대까지. 일련의 장면들은 잘게 갈려진 출연자들의 열기와 혼을 잔뜩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듯한 감동 서사를 닮은 친숙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겠다는 일념이 담긴 땀방울과 눈물방울. 치열하고도 매서운 분위기의 연습실. 본 무대에 임하기 전, 마지막 상태를 점검하는 리허설 무대. 다수의 역사들이 적나라할 정도로 고스란히 우리의 눈에 담겼다. 노력의 바깥으로는 뭉클하게 생긴 이름 모를 실패와 성공들이 거듭되었다.


그들에게 넘겨진 후회 없는 도전을 위해, 보통의 리허설 무대는 실전보다 더욱 실전처럼 진행되곤 한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리허설에서는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 실제처럼 하는 연습이지 실제는 아니다. 실제라는 본 무대는 따로 있다. 나는 지쳤음에도 당당한 포스를 뿜는 어떤 이들의 희로애락 같은 리허설을 보며 종종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한 치 앞도 모를 우리 인생에도 리허설이 있다면 어떨까?


큰일을 견뎌내기 이전에 리허설이 주어진다면. 미리 겪어볼 수 있으니 적절한 대응책과 계획을 세운 뒤 바라는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적은 리스크로 멋지게 이겨낸다는, 해법의 정석과도 같은 삶의 리허설을 우리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될까.


리허설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연습이다. 최종의 결과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사전에 한 번 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일어나고 일어났을 결말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이따금 지나간 일들에 후회하기 마련이니까. 누군가에게는 리허설이라는 묘수가 어떻게든 잡고 싶은 최후의 지푸라기일지도 모르겠다.


때로 우리는, 재난처럼 갑자기 닥친 시련에 쉽게 무너지기도 하고. 더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시간들에 미련을 흘리기도 한다. 자꾸만 어렸던 시절로 돌아가 후회의 자신만 남겨두고선,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리허설을 이룰 수 있는 경험이 주어진다 해도. 나는 그 삶이 진정 계획한 대로 행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을 품게 된다.


방송이나 공연 등의 사전 리허설만 봐도 그러하다. 리허설은 앞으로 닥칠 현실 공간에서의 실수를 덜어줄 예방책일 뿐, 실제 무대에서 어떤 상황이 밀려들어올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공기, 온도, 느낌조차도 말이다. 돌발 상황이라든가 불현듯 발휘될 기지는 그 순간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어쨌든 본 무대는 하나라는 것. 슬프다면 슬픈 이야기지만 제 아무리 연습을 거친다 해도, 수많은 운명적인 부름에 의해 현재는 얼마든 바뀔 수 있다. 한 번은 딱 한 번으로써 특별한 거니까.


타임슬립을 활용한 작품들을 보아도 그렇지 않나. 복수심이나 인생역전을 위해 이전으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면 나중의 미래가 깡그리 퇴색되어, 결국 똑같이 알 수 없는 현재를 만나게 된다. 과거를 바꾸어 더 나쁜 미래가 형성되는 경우가 태반이며, 막상 원하는 대로 무언가 바꾸고 복수하고 이루고 난 뒤에도 훗날엔 이럴 듯한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통쾌하고 짜릿한 감정은 그야말로 순간의 일격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이란 처음이라는 숫자에 깊은 의미를 갖는 결정체다. 매일의 활동과 행동과 일상의 거리에 서서, 예행연습의 강행이 주어진다면. 처음 맞이하는 날들에 대한 작은 떨림, 내지는 상상도 못 할 설렘의 기쁨을 맛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긴장감은 점점 사그라질 것이고, 어차피 재차 주어질 기회에 열렬히 임하지 않거나 소중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나태의 지옥에 갇힐지도 모르겠다.

끊임없는 력과 시도로써의 리허설이라면 마음 깊은 찬사를 보내고 싶으나, 단지 후회화 한탄으로부터 피어나는 그것이라면 안타까움이 먼저 고개를 내미는 듯하다.


불행의 파고가 높아질 때에,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은 인생에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과정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을 끝까지 탐구해 나만이 제조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는 능력도 필요한 법이다. 지나간 실패와 슬픔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그 기억을 발판 삼아 무너지지 않을 더 큰 에너지를 쌓아갈 수 있다면. 리허설 같은 허황된 꿈은 크게 효용성을 잃을 것 같기도 하다.


삶의 리허설은, 어쩌면 모두가 조금 덜 상처받기 위한 요행인지도 모른다. 그 요행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나만이 가진 내 본 무대에서 주어질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거나 놓치거나 혹은 불행에 주저앉거나 뚫고 나가거나, 이 전부의 것들이 오롯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여러 번의 같은 기회를 바라지 않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새로운 다른 기회를 얻기 위해 불철주야 달려 나갈 우리 모두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리허설이 존재하든 아니든, 본 무대는 하나다. 실수를 경험으로 성공을 자존감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다면, 건강한 내일을 개척해 가는 스스로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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