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하는 삶
잊지 말자,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하늘의 별마저 움직임을 멈춘 늦은 밤. 고요한 공기 사이로 끊임없는 생각들이 솟구친다. 숨 가쁜 기억에 대한 후회였다가, 감명 깊은 순간의 감탄이었다가, 가슴 떨리는 사랑이었다가. 수많은 고뇌와 번민들이 선의 모양을 이룬 채 견고하게 점철되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어쩌면 오늘 밤도 일찍 눈을 붙이기는 그른 듯싶다.
이쯤 되면 멈출 수 없는 상념들이 원망스러워진다. 생각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속절없고도 부질없음이 가슴 깊은 곳을 헤집으며 비행을 시작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렇게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선들이 아깝게 느껴진다고. 그러나, 밤마다 당신을 두드리는 어느 날의 후회와 되새김은 정녕 가치 없는 행위일까?
나만의 글을 위해 애정을 쏟아 본 사람이라면 느낀 적 있을 것이다. 완성도 높은 글의 기본이자 기술은 수많은 퇴고라는 것을. 언젠가 적어낸 글이 분명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였으나, 훗날 다시 들추면 전에는 몰랐던 허점들이 구멍 여러 개 난 물풍선에서 물줄기 빠져나오듯 세차게 틈을 비집고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인지, 글이 더 나아지고픈 욕망을 품고 있어 그러한지 알 수 없는 노릇이련만. 출처 모를 신의 뜻대로 거슬리는 부분을 살짝 다듬어 주면 마법처럼 글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생물체가 기리고 바라는 성장에 끝이 없듯이, 퇴고라는 것의 인생관도 우리의 삶과 비슷한 듯하다. 고치면 고칠수록 나아지고 주체성을 찾아가는 검은 잉크 군단을 보면서 사람들은 은연중에 공감할지도 모른다. 역시 노력과 정성은 결과와 비례한다는.
한탄이란 것에서 매캐한 감정을 스리슬쩍 걷어내면, 지난날 써 놓은 글을 찬찬히 톺아보는 행동과 유사점을 갖는다. 유독 밤이라는 계절에 과격한 물결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단상과 상념들 또한 퇴고의 성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심쩍은 하루를 통틀어 바꿔놓을 수 없고 그 안의 글씨들을 감히 지우거나 수정할 수도 없겠지만.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아쉬웠는지 깨달을 수는 있다. 그 깨달음은 찰나의 연기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내 안에서 또 다른 나를 일깨워 주는 긴요한 밑거름이 되어 준다. 돌아보고 곱씹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도, 잇따른 실수의 거듭을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으로 행하는 것들 중에 허투루 흘러가는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
후회화 미련, 되새김질 모두 삶에 꼭 필요한 자양분이다. 실패를 해 본 사람만이 성공의 쾌거를 맛볼 수 있다는 말처럼. 나를 알고 치부를 알고 부족함을 스스로 알아야 마침내 당당한 자신과 동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생각하자. 후회하고 고민하자. 길고 긴 성찰 끝에 어느 정도 이성을 찾았다 치면, 한 발 물러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구석구석 속속들이 돌아보아라. 어떤 것도 그저 그런 쓸모없는 일로 치부하지 말고, 피가 되고 살이 되겠거니 마음먹자. 나를 진정한 일상의 행복으로 감싸 안아 줄, 살아있는 인생의 글 한 편을 위하여.
계속해서 오늘의 아픔과 어제의 욕심을 퇴고하다 보면, 반드시 어느 하루라도 온전한 기쁨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때가 오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수줍게 노크할 그에게 빈 틈을 내어줄 자세와 여유의 태도를 선물하면 된다. 내 안의 나를 퇴고함으로써 얻는, 간절히 찾고 싶었던 주인의로서의 삶. 말로 이루 표현하지 못할 만큼 동경스럽다. 이것이 바로 머지않은, 또는 이미 다다랐을 당신의 생이라는 것을 곱씹어 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