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작

꼭 버려야만 하는 걸까요?

by 블루나잇

마음만 먹으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펼쳐진 누군가의 문맥을 살펴보다가, 돌연 나의 옛 기억이 물밀 듯 몰려왔다. 때는 활력으로 따지자면 하루의 구 할 정도의 체력을 쏟아 이곳저곳을 활보하는 미운 일곱 살 저리 가라 할 만큼의 흥이 넘치던 열일곱 시절이랬다. 우리는 자주 좌절했고, 자주 일어났다. 젊은 청춘의 패기 덕분이었는지 쉽게 넘어지는 것만큼 벌떡 일어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는 편지를 주고받는 유행이 부쩍 맴돌았다. 수업 시간 도중 열강을 펼치는 선생님의 땀방울을 보아도 영 집중이 되지 않을 때에 주로 은근한 밀담이 이어졌다. 우리는 몰래 손바닥 만 한 종이를 찢어 서로에게 일기를 닮은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일기를 닮았다고 말 한 이유는 그 작은 네모 안에 청소년기의 고민들이 줄지어 들어찼기 때문이었다. 너에게 보낸다고는 했지만 막상 샅샅이 뜯어보면 스스로에 대한 고찰 혹은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버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린아이일 적에도 훗날 조금 더 자랐을 적에도 그리고 어른 흉내를 내는 지금까지도 그 습성을 개선하지 못했다. 그것마저 버리지 못했다고 하는 게 맞을까. 남들보다도 소중한 보물이 유난히 많아서 종종 서러운 사람이었다. 비싼 값으로 매길 것은 무엇도 아니었으나 내게 따스한 심적 위안을 전해주기에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쉽사리 갖다 버리지 못하는 성향은 다 지나간 추억을 들추고 싶을 때 꽤나 유용한 재능을 발휘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지만, 내가 가진 개똥은 나름 하이 퀄리티였는지 간혹 커다란 쓸모를 인증하곤 했다. 나의 몇 안 되는 재능 중 유일하게 고급 레벨을 자랑하는 '오래 간직하기'를 녹슬게 만들 수 없, 누군가와 주고받은 일기나 편지들을 조그마한 복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아놓곤 했다.

가끔은 생각보다 몸이 훨씬 빠른 순간들이 있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기를 고대하곤 했는데 그럴 땐 꼭 몸이 너무 빨라서 그 찰나를 온전히 만끽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은 얼마 안 되는 몸의 리더십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몸은 머뭇거리는 생각에게 내가 다 계획이 있으니 나만 믿고 따라오라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왜, 본인 혼자만 멋진 줄 아는 그런 표정 있지 않나. 몸과 생각이 유연한 너스레 안에서 뒤엉키는 사이로, 나는 추억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존재의 시공간을 예리하게 포착해 냈다.


단단하게 일으켜진 내 몸은 방 작은 구석 베란다에 묻혀 있는 종이 무덤을 찾아낸 뒤, 꼬깃꼬깃 접혀있는 이야기 조각을 몇 가지 건져 내었다. 거친 손때가 쪼록하게 묻은 듯했지만 내용만은 결코 훼손되지 않았을 그것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데에 몰두했다. 어딘가 심장 한 켠이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어 황급히 쪽지 하나를 펼쳐 보았다. 단기에 이뤄졌을 시절 편지들이었으므로 대체로 어느 한 시대를 대표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1학년 부근의 우리들이 웃고 울고 떠들고 있는 공간을 조심스럽게 발췌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화두는 주로 공부나 진로에 관한 주제였던 것 같다. 학생을 직업이라고 표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닿는 내 편지가 소설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좋으니 계속 보내달라고도 했다.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었던 그 친구는 훗날 문예창작과에 진학하였다. 나는 한동안 나에게도 특별했던 그녀가 부럽기도 대단하기도 했다. 운명이란 사람이 어찌할 바 없는 순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에게서 맛본 여러 음침한 감정을 직면하고 나니 나라는 인간이 너무나 작고 볼품없게 여겨졌다.


조각 몇 개를 아무렇게나 끼워 맞추자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새로운 조각들이 누추한 모습을 하고서 자신들도 봐달라며 소리 없고 글씨 많은 아우성을 내질렀다. 십 년도 더 지나온 까마득한 벗들이 건강한 폭포수의 형체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중 하나의 노트를 가운데에 두고 날짜를 번갈아가며 교환 일기를 작성하자던 친구와의 기록이 내 옷소매를 슬며시 잡아당겼다. 그 아이와 나는 꽤 각별했던 사이였지만 나만 아는 연유로 살짝 틀어져, 지금은 고작 일 년에 안부 한 번 물을까 말까 한 이렇다 저렇다 정의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었다.


매번 일기 조각을 건네지는 않았지만 내 생일이면 꼬박꼬박 편지를 쥐어주던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와는 지금도 약간의 의욕만 나면 서로의 틈을 주억거리기 위한 약속을 잡는다. 추억을 안주 삼아 몇 시간도 떠들 수 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눈에 보여야만 애정이고 우정이고 사랑인 걸까? 응당 맞다고도 결코 아니라고도 대답하기 난감한 물음인 것 같았다. 어떤 만남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구수하며, 때로는 곰탕처럼 끓일수록 진해지는 마음을 오랜 시간과 비가시적인 신뢰로 증명해 내기도 하니까.


지난날 우리가 떨었던 수다는 여전히 그 연도, 그 날짜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미래로 뛰어넘은 듯 한 기분이 들어 아찔하고도 이상했다. 손을 조금만 뻗거나 결심만 굳건히 먹으면 철없고 순진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으므로. 하나, 무슨 수를 쓴다 해도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보아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예로는 세월일 것이다. 나는 한 때 내 삶의 전부였을 어떤 노래와 음표들을 아예 잊지 않기 위해서 종종 편지를 꺼내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곱씹으면 창피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난무하는, 몰랐던 귀퉁이 한 구석이 튿어졌거나 오 퍼센트 정도 모자란 이야기들이지만,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아련한 감성이 짙게 배인 우리들의 숱한 어린 날. 일상의 찬란한 조각들. 그녀들이 목청 높여 말하던 꿈을 진정으로 이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자신의 자리를 멋지게 지켜 내며 부끄럼 없이 살고 있을 거라는 데에는 이름 모를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친했던 친구로서의 증명이자 행복했던 학창 시절의 증거로 남겨지고 싶었다.


지금의 사이가 어떻든 그날의 나를 행복하게 해 줬고, 그날의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줬으니 그것으로 우리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할 만큼 했다는 어휘를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후회라는 것은 한 발자국만 돌아보아도 우연히 생기는, 원인을 모르고 어쩌면 당연하게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아니었던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 치열한 교육열 안에서 전우애를 나눈 사람들이니 온갖 순정을 쏟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했다. 내 친구들은 강한 아이들이었다. 평생을 잊지 않고 싶은, 그리하여 자꾸 되뇌고 싶은.


삶이 버석해지고 으스러져 갈 때마다 나는 또다시 그들을 펼쳐 묵은 먼지를 탈탈 털어낼 것이다. 후엔 어둡고도 반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변해버린 탁한 눈동자를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말이다.


잘 지냈지? 사는 게 유독 힘든 것 같아, 네가 아주 많이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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