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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Mar 19. 2023

쉬운 이별, 그럼에도 사랑

무력해지는 사람들의 상관관계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은 쉽다. 다시는 보지 않기로 약속하고, 방금 뱉은 약속을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아주 몰랐던 것처럼 각자의 삶에만 집중하면 된다. 정 힘들다 싶으면, 자다가도 걷다가도 먹다가도 입다가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떠오르는 기억에 살포시 눈물 쏟으면 된다. 애초부터 슬픈 후폭풍이 들이닥칠 것을 알고도 내린 결정이었지 않나. 분명 감내하겠다 마음먹고 저지른 결말이었으니, 쉽게 헤어진 만큼 그저 쉽게 감당해 내면 될 일이다.      


마음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나면 크게 신경을 두지 않게 되었고. 신경을 두지 않게 될 때쯤 나는 주로 이별했던 것 같다. 연인과 친구와 그리고 사회의 어떤 구성원들과. 기약이 없는 마지막을 주고받았다. 마음을 끝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별이 없다면 좋았겠지만 이별이 있기에 존재하는 순기능들도 여럿 있다. 이제는 그 출처가 지워진, 언제는 단 하나의 목적지였을 그곳으로만 깊이 쏟았던 감성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흘려낸 것은 그냥 버리는 셈 치고. 앞으로 펼쳐질 귀중한 감정과 시간을 분할하여 이익이 될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것. 더 이상 사소한 대화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것. 속 편하게 나만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 절대적인 손해 없이 주어지는 헤어짐은 때로 편안함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렇게 선한 이득이 꼬리처럼 따라붙는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함께이길 원한다. 사랑하는 이와 맞이하는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고, 그 영원 속에서 불멸의 영원을 찾아나가길 바란다. 현실은 잊고 새로운 이상의 없었던 현실을 꿈꾸곤 한다. 몰랐던 자신을 찾은 것만 같다며 감동에 젖는다. 전부를 만났다고 기뻐하면서. 기다려 온 내 반쪽이 당신이라고 상기된 얼굴로 말한다. 짙어지는 붉은 빛깔을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 한다. 헤어지기 싫어한다. 외롭고 싶지 않아 한다. 함께일 때와 혼자일 때의 눈물은 마치 종자가 다르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본디 사람은 혼자였음에도 혼자가 될 거라는 진실 믿을 수 없어한다. 그러다가도 다를 바 없이 헤어진다.     


떠나가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비참할까.     


통상적으로 본다면 덜 진심이었던 사람이 덜 슬플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둘러보면 그렇지도 않다. 열렬히 사랑했기에 헤어짐에 유리한 사람도 있었고, 만남에 염치없는 계산이 컸기에 헤어짐에 불리한 사람도 있었다. 온통 불분명한 가설들 중에서 입을 모아 단언했던 건, 끝난 후에 깨닫는 사랑이 가장 슬프다는 사실이었다. 뒤늦게 알게 되는 것만큼 미련하고 후회스러운 그늘이 또 어디 있으랴.      


아팠던 사람은 계속 아프고 괜찮은 사람은 계속 괜찮아지는 날들이 반추되는 것 같다. 지난 사랑이 나빴다고 이번 사랑이 좋으리라는 법은 결코 없었다. 나는 등가 교환의 수식에 어긋나는 상황들이 사이와 관계들 속에 묻어있는 경우를 자주 보고 듣고 느껴왔다. 타고나길 사람으로 인한 복 자체가 없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남편 복, 아내 복, 자식 복, 귀인 복과 같은 여러 부류의.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주어진다는 어느 이론의 행운처럼 말이다.    


나는 이따금 사는 데에 정해진 운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 덕에 힘든 일도 좋은 일도 그러려니 넘기는 방법을 배워왔다. 희한하게 잘 안 풀리는 문제나 유독 시원하게 풀리는 사건들이, 그에 맞는 순리이자 기운에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애써 다독이던 적이 있었다. 애틋한 남에게 위로해 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한결 해소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지나갈 것을 알기에. 나쁜 일이 즐비할 때에는 맞서 나갈 희망부터 찾았고, 기쁜 일이 잇따를 때에는 신중하고 겸손해질 수 있었다.      


수많은 헤어지고 결합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것들은 각고의 노력으로 일궈나갈 수 있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일궈나갈 수 없기도 하다. 알다가도 모를 삶의 일환들을 생각하다가 나는 떠올렸다. 더 좋은 시간을 기대하고, 아픈 시간을 대비하면서. 비슷하게 생긴 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고. 두렵고도 불안하고 서러우면서도 행복한 나날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이별을 사랑을 반복하겠지만. 그럼에도, 살아나가고 있지 않냐고. 성공한 인생, 좋은 인생이란 게 어쩌면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평생을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있다고 하던가. 아무렇게나 떠다니는 이름 모를 이별을 고뇌하다가, 오늘도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이 있음에 고마워졌다. 사랑하는 어느 당신의 앞에서 나는 조금 더 멍청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많이 멍청해서 당신만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앞에서 손쓸 수 없을 만큼 무능해지는, 순백으로 물든 서로를 바라보고 싶어진다. 당신의 부족함을 매 순간 내게 들켰으면 좋겠다. 한참이나 모자라 보여서, 그리하여 내가 나로 하여금 가득 채우고 싶게 만드는 완벽히 투명한 모습을. 그런 당신을 나는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긴 시간, 이별과 사랑과 삶과 우리를 번갈아 생각하다가 어느 노래 제목이 돌연 뇌리를 스쳐갔다.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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