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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Jan 16. 2023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내가 언제 달라고 했어? 네가 그냥 준 거잖아.

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가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멋진 자연 속의 일부였음을 깨닫곤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나를 이렇게 아름답게 자라도록 도와준 이들에게 보답하겠노라. 그 이후로 나무는 조금의 한눈도 팔지 않고 거센 바람과 폭풍에도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그 모든 건 본인을 잘 가꾸어 주었던, 인간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몇 개의 계절을 지나, 비로소 매서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한겨울까지 이겨낸 나무는 서서히 파란 이파리를 돋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뒤엔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내가 당신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결심하면서.     


햇살이 따뜻한 온도로 기울고, 아름다운 봄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이 얇은 옷을 입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마치 그들의 웃음을 위해 자기가 피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가오자 나무는 기다렸다는 듯, 싱그러운 꽃과 풀잎을 펼치며 꿈에 나올법한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했습니다. 더울 땐, 나뭇잎을 흔들어 바람결을 얹어주고, 뜨거운 해의 장난이 짓궂어질 때에는 한 폭의 포근한 그늘을 건네주며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나날은 따뜻고 평화로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예쁘게 봐주던 물망초 같은 눈망울에는 무서운 독기가 차올랐습니다. 그들은 나무의 잎을 움켜쥐고, 꽃을 잡아 뜯으며 악랄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더 이상 나무가 알던, 소박함에 행복해하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그늘도 꽃도 모두 지겨워진 것 같았습니다. 큰 열매를 내놓으라며 떼쓰는 일이 잦아졌고,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엔 멋대로 침을 뱉고 떠났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는 슬펐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지, 이렇게 뺏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잘해주다가도, 문득 이 잘해준다는 행동이 상대에게 언젠가 당연한 몸짓으로 기억될까 봐, 그리하여 나를 쉬운 사람으로 여기게 될까 봐 겁이 납니다. 그럼에도 잘해주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 그게 그들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잘해주었을 때, 그것을 당연하게 알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가 나쁜 것이지, 잘해주는 행동 자체를 두고는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잘해준 사람이, 결국 나쁜 사람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 한쪽이 시큰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집니다. 선의가 가득 담긴 행동을 할 때에도, 내가 상처받을까 두려워야 한다는 것에 때로 허탈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기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사실을 증명해 내는지가 아니라,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착한 일이 지레 겁먹고 돌아서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슴도치와 비슷해서, 어떤 나쁜 이가 나에겐 좋은 이가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좋은 이가 남에겐 나쁜 이가 될 수도 있다는데. 좋고 나쁨을 논할 때 나의 진심이 담긴 선행이 발목을 잡게 될 것이 무서웠습니다. 네가 해 주었으면서 왜 보답을 바라는 것이냐며 질책의 소리를 듣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보답을 바란 적 없지만, 상처를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연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내쳐지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기대가 많았다면 미안합니다. 다만, 우리의 모든 좋아서 해 주는 일들이, 일상 속에서 당연한 사람으로, 그리고 당연한 일들로 여겨지며 아무 곳에나 나뒹굴지 않기를 바랍니다.

    

좋은 당신은, 당신의 소중함을 잊지 않아 줄

좋은 사람과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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