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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Dec 03. 2023

꼬리

가시의 믿음, 비가시의 증명.

잃어버린 꼬리를 찾는다. 일주일 중 가장 꼬리 같은 날에 서서. 꼬리보다도 더 뒤처진 끝자락에 앉아. 태어났을 땐 붙어있던 꼬리가 점차 자라나며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의문. 삶을 떠올리는 재고의 기억들은 이미 흩어진 지 오래라, 마치 처음부터 없던 꿈속의 일로 착각하며 크게 반등하듯이. 푸른 빛깔을 덮어가는 고래의 등줄기. 그런 기운들과 기분들을 되찾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을 걸어볼까. 보고 싶은 목소리에게 낡은 통화 버튼을 두드리며 마냥 떨리는 손길로 무전을 기다릴 순 없을 터인데. 그저 어딘가에 집중하고 싶어 시선을 돌리다가 여든일곱 번째 순서에 마주친 것이 꼬리의 잔흔이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저물어가는 해가 꺾이자 겸연쩍게 허리를 추켜세 손톱 달 저문 밤이면. 찾아본다. 어릴 적 밤잠을 설치던 기억 끝에 매달려 가물가물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의 꼬리를.     


일 년에 걸쳐 노트 한 권을 채웠다. 같이 소진되기 시작한 펜촉의 검은 잉크는 아직 명을 다하지 않았고, 모로 누운 글씨에 빽빽하게 맞물린 얇은 줄과 녹슨 칸들은 이제야 죽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비로소 숨을 쉬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새벽은 글자를 놀렸던 이의 흑심으로 가득했다. 어째서 함께 발을 굴렀음에도 비등한 결말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생이란 때로 갑갑하고 어렵고. 누군가에겐 불공평하기도 다른 누군가에겐 수월하기도. 그런 온갖 잡무 같은 업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은 세상을 탓하기 이전에 먹고살 궁리로 주린 배를 끌어안으면서. 나는 다를 거라고, 얕은 희망으로 갖은 고통을 덮고 또 덮어가면서. 팔자가 세다는 말이라도 들을 새라 입꼬리는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는, 다 식어서 퍽퍽한 낯으로 돌덩이 닮은 밥을 푹푹 떠먹기도 하고.      


허접한 위로랍시고. 얕은 가슴에 질투와 번민이 쌓여가면 목구멍 깊은 구석부터 회한과 울음이 뒤섞여 만국 공통의 언어라도 창조한 듯이 한데 뭉쳐 피를 토해낸다. 읽는 이가 누구든 비단 남의 일이 아니라 말하며.

     

힘들고 나니, 힘들던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 진정 괴로울 땐 누군가의 시선조차 전부 위선으로 다가오기만. 그럼 먼 우주의 계시로부터 온통 불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나는 가만가만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하면서도 들켜서는 안 된다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밖을 향한 원망의 보일러를 키우고, 속죄 따위는 내가 겪을 수순이 아니라고 바랄 거면서, 곧 죽어도 그럴 거라서. 아파 보니까 아픈 마음이 미꾸라지 수염만큼 헤아려진다. 건방진 표정으로 비칠까, 누굴 걱정할 새도 없이 나도 많이 아프니까. 내가 제일 아프니까. 내뱉는 말들이 네게는 상처가 아닌 위로로 통할 것을 알기에. 내 아픔이 간혹 너에겐 영양가 없는 위안이 될 거라 믿어서. 괜찮냐는 물음엔 어쩐지 안도의 가시가 섞인 것 같다. 아무렴 괜찮아, 괜찮고말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건 나니까. 내가 짓밟힌다 해도 차라리, 차라리. 나는 자조의 인간이다. 그게 바로, 네가 안심할 나야.    

 

섞일 줄 아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꼬리를 만난 적 있을까. 아니, 한 번이라도 마주친 적 있을까. 되돌아가야 할 곳을 알아서, 그래서 여유로운 웃음을 보일 수 있나. 친절하고 싶었으나, 종이 한 장 찢어낼 여유가 없는 것처럼. 초면인 누구에게라도 금방이고 쇳덩이 같은 고뇌를 풀어버리고 싶다 생각하는 것처럼. 충동이 인다. 이것은 파도보다 짙은 파도. 따라올 수 없도록 높은 파고. 무식한 영민함을 말로 이룰 수 없으니 우울이라는 슬픔의 번뇌랑은 사뭇 달라서. 내가 네게 가끔 건네는 손길 한 번으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을 알아. 사실은 우리가 바라왔던 것. 입으로 차마 그릴 수 없다는 게 아프다. 마음으로만 품으면서도 수십 번 수백 번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편재. 겉잎과 속잎의 다른 개체가 하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시간이 희어질수록 그리운 일은 아파지고 좋았던 일은 다시 그리워지고. 재회를 기다리면서 기다리지 않고. 보기 싫은 것은 더욱 꼴 보기 싫어지고, 나쁘게 사는 내 모습이 싫어서 억지로 웃음 짓기도 했다. 그러다가 차가운 눈빛에 길을 잃고 문을 닫고, 그럴 땐 나이마저 잊고 일곱 살의 동굴 속으로 몸을 숨기기부터. 몸만 자란 어른이라는 표현이 응당 그러해서. 이해했다고 생각은 했으나 실은 그냥, 크게 언쟁하기 싫어 고개를 끄덕이는 날들이 늘어나듯이. 핑계에 기대고 싶었던 일들은 내가 지어낸 핑계로 인해 거칠고 초라해지는 법이 잦았다. 애초에 찾으려 했던 꼬리가 실존의 환상이었는지. 무엇을 좇느라 제때 숨도 못 쉬는 것인지. 삼일 정도 지나 꿉꿉한 팥죽을 씹을 때보다 공허한 느낌이 너를 삼켜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깊어서, 깊음은 더 깊음으로. 그 애는 그곳이 자신의 터라는 것을 알고 있나.     


잃어버린 꼬리를 찾는다. 칠일 중 가장 꼬리 같은 날에 서서. 꼬리보다도 더 뒤처진 끝자락에 앉아. 다가올 내일이 꼬리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그 내일이 평생을 떠돌며 헤맨 꼬리가 맞을지도 몰라서. 막상 찾는 그것이 나를 어디로 싣고 떠날지 안개처럼 뿌연 경로만을 가리킨다 해도.     


무언의 중심을 가로지른 심지 굳은 마음.

그것이 우리가 일어설, 시작과 연결이라는 것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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