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어느날
엄마, 아버지, 보고싶소
처음 진단부터 4기암을 판정받은 엄마는 전이된 암의 방사선치료도 잘 이겨냈고, 다행히 먹는 항암제가 효과가 있어 말기 암 환자 같지 않은 말기암 환자 생활을 했다.
때마다 손자들 용돈을 챙겨주시고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생일도 잊지 않고 챙겨주셨다.
그렇게 2년을 투병을 하시고 지난 7월 어느 일요일에 가슴이 답답하시다 하여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1인실 응급실에서는 퇴원하면 뭘 먹으러 갈지 등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아들과 1박을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3일 후 수요일에 조용히 내 곁을 떠나셨다.
믿을 수 없고 믿기지도 않지만, 그렇게 아들 곁을 영영 떠나셨다.
지난해 식도암 1기 진단 후 긴 수술을 잘 이겨내시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시던 아버지는,
엄마 가시고 5개월 후인 12월 초에 식도 부위의 불편함 등을 느끼셔서 제대로 된 식사가 힘들어져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시었다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여 퇴원 후 아버지 거처를 어디로 할지 등을 논의하며 한 분 남은 아버지 돌봄에 대해 형제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치료 도중에 흡인성폐렴이 발생한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이어갔고,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엄마 가신지 채 6개월이 안되었다.
믿을 수 없고 믿기지도 않지만, 그렇게 아들 곁을 영영 떠나셨다.
엄마 돌아가신 후 삶이 너무나 힘들었다.
슬펐고 비통했고 무기력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엄마는 무려 2년의 준비 기간을 나에게 주셨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긴 후 불과 며칠의 시간만 주시고는 그렇게 훌쩍 먼저 간 아내 곁으로 떠나셨다.
먼저 간 아내가 못내 그리워 아버지가 서둘러 따라가신 건지,
혼자 지내시는 남편이 안쓰럽고 애처로워 엄마가 빨리 부르신 건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난 그저
불과 6개월 사이에 부모님 두 분을 보낸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적응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엄마 가신 후 슬프고 힘들어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는데,
뒤이어 아버지가 가시니 슬픔 따위의 단어는 비교도 안되는 절망감이 온다.
그렇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비현실적인 2022년은 지나갔다.
앞으로 한동안은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어쩌겠는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믿기지 않는 지난날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일어나야겠지.
나에겐 부모의 부재도 이기게 해줄 딸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불면증과 우울함 따위는 딸아이들이 치료해 주리라 믿고,
두 다리와 엉덩이에 힘을 주고 일어서는 연습을 해봐야겠지.
보고싶고, 그립지만
어쩌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