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탓이다, 다 내탓이다.
남자가 나이가 점차 들어감에 따라 느끼게 되는 가장 큰 감정 중 하나가 상실감이 아닐까 한다.
젊은 시절엔 뭔가 하나라도 더 손에 쥐려 노력하고,
움켜쥔 걸 놓지 않으려 아등바등 대며 살아오다가
어느덧 자의가 아니게 하나둘씩 내려놓아야 하고, 떠나보내야 한다.
아직도 마음은 펄펄 날아다니던 그때에 머물러 있는데
야속한 몸은 조금만 무리를 해도 후유증이 몇 날 며칠을 간다.
아버지의 젊은 날은 화려했다.
잘생긴 외모에 언변도 좋아서 어떤 일이든 앞장서서 이끌어 나가셨고,
운동신경도 좋아 축구도 선수급이셨다.
필체도 여느 서예가 못지않게 좋았으며
리더십도 좋아서 많은 모임을 이끄시는 리더셨다.
한때 오토바이도 멋지게 타고 다니셨고, 술 한 잔의 풍류도 즐기셨다.
그런 아버지가 점차 늙어가시는가 싶더니
다리가 가늘어지며 힘이 빠지고 급기야 지팡이를 짚으셨다.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시력까지 나빠져 식탁 위의 음식조차 깔끔하게 보지 못하셨다.
장시간에 걸친 후두암 수술도 힘에 겨우셨을 것이다.
수술 후 회복 과정 중에 병원 내에서 코로나까지 감염되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억류 생활까지 힘겹게 견디셔야만 하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오랜 기간 유지하시던 건설업을 폐업하셨다.
그때 맞닥트린 상실감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퇴직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을 일궈온 사업장을 없애는데 그 상실감이 오죽했겠는가.
그 과정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묵묵히 해내셨다.
그저 잘 정리하시었다, 이젠 쉬셔도 된다고 말만 해대는 아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우셨을까.
이제 그냥저냥 동네 노인네로 살아가셔야 하는 상실감이 얼마나 크셨을지를 헤아렸어야 했는데,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평생의 반려자를 먼저 보내셨다.
아버지의 아내인 내 엄마는 비록 2년여 시간 동안 암 투병 중이긴 했지만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계셨다.
그런 아내가, 같은 밥상에서 하루 세끼 나누시고 한 이불 덮고 생활하시던 아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거다.
부인을 먼저 보낸 상실감이 어떠했을까?
아들은 아버지의 그 상실감부터 챙겼어야만 했다.
병들어 노쇠해진 몸으로 사업장을 정리하고,
투병하던 부인마저 먼저 보내게 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실감을 아들은 곁에서 챙겼어야 했다.
아들은 엄마 잃은 본인의 슬픔 속에만 빠져들어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그 핑계를 대고 제 슬픔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채, 상실감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아버지 혼자 계시게 했다.
그렇게 강단 있고
그렇게 건강했고
그렇게 유능하던 아버지조차
이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이길 수 없으셨나 보다.
그렇게 몇 달 만에 먼저 간 아내 곁으로 가셨다.
무심하고 괘씸한 아들보다는 아내가 있는 하늘나라가 더 나으리라 판단하셨으리라.
내 탓이다.
다 내 탓이다.
그저 죄송하고,
아프다.
많이 아프다.
오늘 밤에도 술 한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