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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n 09. 2024

스토커에 대한 정중한 예우

BS에게...



BS에게

사실 너와 이렇게까지 친밀한 사이로,
이렇게까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어.

미안한 얘기지만, 처음부터 너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로 생각했던 건 아니었거든.

사실 난 어느 시점부터 너와 내가 일상을 공유할 정도의 친밀한 사이가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건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을 가까운 사이로 붙어 지냈기 때문일 거야.
왜 가까울수록 서로에게 무던해진다고들 하잖아.

예전에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아주 어릴 때는 너하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었대.

그랬던 너와 내가 언제부터인지 소원해지더니, 제법 오랜 시간을 서로의 존재를 잊은 채 지냈다고 하더라고.

너와 내가 막역하게 친했던 그때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단지 너무 어릴 적 일이기 때문일 거야.
내 기억이 닿지 않을 정도의 멀고 먼 어릴 적 일이니까 말이야.

정확하진 않기만,
다시 내가 너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20대 중후반 때였던 것 같아.
너라는 존재와 스치듯이 같은 공간에 머물기는 했지만, 왠지 네가 나하고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었어.
나에겐 어릴 적 기억도 전혀 없었으며, 너는 다른 사람들과도 꽤 잘 지내고 있는 걸로 보였으니까.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너라는 존재를 무시했던 것 같아.
아니, 사실은 자꾸만 내 곁에 머물려 하는 네가 싫어서 점점 밀어내려 했다는 걸 인정할게.

미안하게 생각해.

그런 나에게 너는 왜 그렇게 집착했던 걸까?
무심하게 대해도 늘 곁에 있고,
밀어내려 해도 자꾸만 다가오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싫다고 하는데도 지고지순한 애정을 내게 표현했었지.
지금 생각하면 이런 아련한 스토커가 또 있을까 싶네.

하지만 지금도 내가 너를 마냥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란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저 무던해지면서 거부감이 줄어들었을 뿐이지 너를 좋아하고 아끼는 건 아니니까.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모순된 얘기지만, 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도 오늘 고백할게.
넌 나에게 끊임없이 강한 동기부여를 주는 존재야.
게을러지지 않게 채찍질하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항상 운동하게끔 동기부여해 주기도 하지.
네가 주는 이런 동기부여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해.
그런 면에서는 고맙다는 생각도 어쩌다 한 번씩 하기도 해.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너와 나는 시나브로 가까워졌고, 급기야 너와 내가 잘 어울린다는 말까지 듣기 시작했어.

기억나?
처음 너와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보였던 반응 말이야.

나는 화를 낸 건 아니었어.
단지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의도가 괘씸했었고, 그 순간이 어이없어서 짜증을 좀 많이 내긴 했지.

그렇게 말한 그 녀석은 은근히 너와 나를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너와 자기가 더 어울려 보이길 원했던 것 같아.
그런 질투심에 너와 내가 잘 어울린다는 속에 없는 말을 했을 테고, 그 녀석과 나는 한동안 어색한 사이로 지내게 됐었지.

너의 고집에 질려버린 걸까?
어느새 나도 너를 받아들었어.
기억조차 없는 어린 날에 맺은 인연이, 한동안의 침체기를 지나 다시 운명처럼 되돌아오는 느낌이야.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네 고집을 꺾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해.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는 것도 인정해.


그런  너는 조금만 그 고집을 내려놓을 순 없을까?
고집도 세고, 욕심까지 많은 네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니까 말이야.

우리 타협이란 걸 해보자.
나도 너를 받아들이고 함께 사는 방법을 더 고민해 볼게.
너는 적당한 선을 넘지 말기로 하자.
나와 더 가까워지길 요구하지 않는 걸로 타협하는 거지.

그래,
나도 더 노력해 볼게.

지치더라도 노력해 볼테니까 너도 날 좀 이해하고 내 뜻을 따라주길 바라.
어차피 오래갈 거라면 조금만 양보하며 살아보자.


덧 1. 아내는 아직도 널 우습게 여겨. 싫어해.

덧 2. 직접적인 관계를 밝히기가 꺼려져서 이니셜로 표현하는 걸 이해해 줘.

내 친구 뱃살아.





STA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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