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모른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에게는 아이의 모습이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1년 전 같은데,
실상 아이들에게는 하루씩 날이 쌓이고 쌓여, 어느덧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 있다.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늦게 아이를 얻은 나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를, 그것도 연년생으로 둘을 내리 얻고 나니 이렇게 예쁘고 소중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두 아이가 나에게는 아직도 애기 그 자체인데 어느덧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한다고 하고, 시험을 치르고, 엄마와 티격태격 다툼질도 하고 있다.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하면, 술 많이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운동이라도 다녀올라 치면 초콜릿을 챙겨 먹으라고 아빠를 위해 꺼내놓기도 한다.
이렇게 예쁜 딸아이들에게 무얼 못해주겠는가?
비록 여건이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못해주는 것도 있겠지만은,
마음 같아서는 피와 뼈를 뽑아내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은 게 아빠의 마음 아니겠는가.
아이는 모른다.
이렇게 모든 걸 쏟아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알고 있다면 아이가 아니지.
제 서운한 거 있으면 서운한 티를 내고, 불편한 거 있으면 불편한 티를 (어쩌면) 일부러라도 내며 자기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아이가 아니지.
부모가 저희한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해주는지를 아이가 안다면 사소한 투정도, 엄마와의 잦은 투닥거림도 없겠지.
아빠는 처음이지만 어른인 나는,
아이를 이해하고 맞춰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야단도 치고 화를 내기도 한다.
모든 아빠가 겪어가는, 그리고 겪어 냈던 과정 아니겠는가.
아이는 몰랐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키우는 현재의 나도, 저 어린 시절 아이였을 때는 몰랐다.
피와 뼈를 뽑아내서라도 나를 위해 모든 걸 다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내 아빠와 엄마인지를 그때는 몰랐다.
모든 걸 쏟아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몰랐다.
서운한 거 있으면 서운한티 내고, 불편한 거 있으면 일부러라도 고집을 내세우는 나를 그분들께서는 넉넉히 이해해 주고 계심을 그때는 몰랐다.
그분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알았다면 사소한 투정도 잦은 투닥거림 조차도 없었겠지.
현재에 아빠가 처음인 나는,
그때 그 어린 시절에는 아이가, 아들이 처음이지 않았던가.
그랬는데도, 내 아빠 엄마는 야단을 치지도 화를 내지도 않으셨다.
그때 그 아이는 몰랐었다.
내 부모가 겪어냈던 그 과정을 말이다.
알 수가 없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비롯한 많은 저장 장치에는 무수히 많은 아이들 사진이 들어있다.
사진 찍고 저장하기 너무 편한 세상이지 않은가.
그 많은 사진 중 두 분 부모님 사진은 희귀하다.
그나마 지금 휴대폰에 들어 있는 사진도 돌아가신 후 두 분 휴대폰에 있던 사진을 옮겨 놓은 것들 뿐이다.
어찌 이렇게 무심했는지...
나는 어릴 적 사진이 없다.
1년여 전, 부모님 돌아가시고 본가가 비워져 있던 얼마 동안 사진앨범 등을 박스에 담아 두었는데, 누군가 귀중품이라 생각했는지 가져가 버렸다.
추억으로 간직되는 사진들이 없어진 것도 서운하지만, 두 분과 함께 찍은 모든 순간이 사라져 버렸다.
몹시 안타깝다.
모르고 몰랐던 과거의 그 아이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또다시 모르는 분야를 살아간다.
그러나 잘해나갈 것이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 도움 덕에 돌아가신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을 아빠로 하루씩을 더 채워낸다.
이 아이들도 훗날 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기 전 까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저희들을 위해 얼마나 큰 사랑을 쏟아부었는지를.
마치 내가 내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을 채 모르고 살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빠른 후회란 없다.
후회란 언제나 늦은 것이다.
못난 아들은 갑작스럽게 두 분 떠나시고 후회를 한다.
늦은 후회를 한다.
왜, 계실 때 한 발짝 더 다가가지 않았는지
왜, 그 흔한 전화통화라도 한 번씩 더 하지 않았는지
왜, 왜, 왜 그렇게 살았는지...
오늘도 그리움 가득 간직한 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잘 살아야지.
그것만이 뒤늦은 효도임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리운 후회 가득안고...................청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