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통해 나를] 기다려 봄.

2020년 봄 / 막 꽃이 필 무렵

by 물꿈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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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으로 이제 봄이라지만 아직은 겨울이라 불러도 될 법한 제법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봄이 바짝 다가오면 큰 욕심 없이 아이들과 집 앞 작은 공원을 함께 걷고 싶다. 봄을 아이들과 즐기고 싶은 이유는 그 온화한 온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봄이 새롭게 드러내는 색을 한껏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몇 번의 반복적인 시간을 돌아 맞이해도 눈이 환해지는 색색의 봄 풍경이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순간 긴 겨울이 끝났음을 바람이 아닌 색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무언가 막 시작하는 느낌의 아름다움. 봄을 맞이해보면 왜 아이들을 비유해 ‘새싹’이라 칭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된다. 그 특유의 밝음과 힘. 돋은 싹들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보다는 이미 완성된 싹의 색과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봄과 함께 지금 마냥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운 것처럼.


내가 지금 우리 아이보다 더 어렸던 꼬마 시절, 아버지는 퇴근 후 종종 세발자전거에 끈을 매고 나를 끌며 동네 뒷산을 올랐다. 사업을 해 비교적 일찍 퇴근을 하셨지만 어쩔 수 없이 늘 어둑어둑 해질 때 출발해 깜깜한 시간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껏 아버지께는 말하지 않았지만 겁이 많던 나는 밤 산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집에 돌아가기 전, 어머니와 누이들 몰래 사주었던 아이스크림 때문에 늘 가자고 졸랐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돌이켜 떠올려 보면 그 아이스크림의 맛보다는 걸어가는 내내 아버지가 흥얼거리던 노래와 산기슭의 은은한 향이 더욱 또렷이 기억이 난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중저음의 목소리와 5월의 환한 아카시꽃향. 잠시 눈을 감아 본다.


또 어린 시절 집 앞 버려진 공터의 풍경도 함께 봄과 함께 기억이 난다. 그 누구가 심지 않아도 바람을 따라 이주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과 풀들이 그곳에는 무성했다. 차마 잡초라고 부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색색의 풀들. 녹색과 청색으로 차마 묶을 수 없던 각각의 푸르름을 자랑하던 색의 향연에 나는 한동안 빠져 있었다. 늦봄에 올라오던 봉숭아 꽃을 따다 누이들과 함께 손끝 마디 계절을 수놓았던 시간들 또한 좋은 추억이다. 지금 나의 아이들은 자신만의 봄을 어디에 새겨 넣을까? 혹시 회색 아파트 단지 속 안에서 진짜 봄의 색깔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아이들도 부디 각자의 계절 안에 색을 잇고 그려내며 그렇게 자신만의 생을 아름답게 채색해 가길 바란다. 해서 봄을 만끽한다는 것은 생의 환희를 만끽한다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프롤로그가 제법 풍성해지길 바랄 뿐이다.


갑갑한 마음에 베란다 문을 열어 본다. 동시에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여럿 날아든다. 참새, 까치, 그리고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새들의 소리들이 거실 안에 뒤섞인다. 살펴보니 집 가까이 아파트 중간 층수까지 닿은 높은 나무 위에 까치가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둥지를 만들고 있다. 짝짓기의 계절이 다가오자 분주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목소리에 일종의 흥이 녹아 있는 것만 같다. 그 기운이 나와 아이들에게도 전달된다. 혹시라도 까치나 참새가 우리 베란다 창살에 쉬었다 가진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본다. 예전에도 몇 번 비슷한 경우가 있어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까치는 제 집을 짓느라 바쁘고, 참새들은 제 무리들과 수다를 떠느라 우리의 기다림에는 하등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의 눈빛엔 아쉬움이 역력하다. 내 어린 시절에도 먹이를 쪼는 새들에게 손을 뻗어 다가가면 서둘러 달아나 못내 아쉬웠었는데 말이다. 그들을 해할 의사가 없음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은 어른이 된 지금도 똑같다. 혹은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 것일까? 서로 안전할 수 있는 거리.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추억과 현실의 거리, 아이들과 나와의 거리. 애착과 독립 사이의 건강한 거리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또 얼마만큼의 봄을 다시 맞이하게 될까? 해마다 매번 이 환한 세계에 자신만의 색 이름을 붙이며 살아갈까? 혹은 누군가가 일러준 색의 이름 그대로 기억하며 탁한 세계를 그려낼까? 부디 아이들의 기억 속 사진은 흑색이 아닌 형형색색이면 좋겠다. 뚜렷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그려낼 수 있는 색을 가슴속으로 모아 모아서.


이제 채집의 시간이 다가온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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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의 다음 이야기는 6월 20일에 공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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