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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Jun 12. 2020

굿 퀘스천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의 형태

직업적인 이유로 평소 이런저런 교육 현장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모습을 제법 다양하게 보는 편이다. 확실히 과거에 비해 질문하는 분위기는 쉽게 형성되는 것 같다. 하지만 종종 혼란스러운 질의응답 시간을 마주 할 때면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질문 구성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고는 한다 (물론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 안에서 이를 경험하거나 훈련받을 기회가 전적으로 부족했을 테니 말이다). 해서 다수가 함께하는 교육 현장에서 내가 경험한 좋은 질문과 그렇지 않은 질문에 대해 조금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중 먼저 떠오르는 몇 가지 좋지 않은 질문 케이스를 나열하자면,


- 질문을 위한 질문형: 이런 사례는 대부분 '질문이 없고 싸한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급조한 경우가 많다. 내부 스텝이거나 공감능력 뛰어난 분, 더러는 좀 튀고 싶은 분들이 하기도 한다. 급히 질문을 마련했기에 전체 주제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인 경우가 많다.


- 자기 과시형: 자신도 해당 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질문. 전체적으로 부연이 길지만 질문 자체는 빈약한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용두사미 형태.


- 멱살잡이형: 공격을 위한 질문. 혹은 상대방을 골탕을 먹이기 위한 질문. 어투가 정중하더라도 해당 교육과 관련 없는 내용을 끌어와 전문적 식견을 요구한다. 문제는 뛰어난 교수자가 그것을 능력껏 소화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분은 질의응답 시간을 일종의 지식 대결이나 전투의 장으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질문을 몇 가지 꼽자면,


- 가교형 질문: 교수자가 진행 시간 등 여러 이유로 내용을 스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엔 어떻게든 내용의 ‘함몰부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빈틈을 부연할 수 있을 만한 ‘흐름을 읽는 질문’은 다소 가벼운 질문이더라도 실제 교육 과정 안에서보다 훨씬 풍성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 물론 이 지점에서 교수 및 강연자의 진짜 실력도 드러나게 되니 여러모로 유익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 현실 반영형 질문: 주제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교육 내용이 이론화-문서화되면서 다소 시의적 영역이 빈약해졌을 때 현실감각을 짚어주는 질문은 전체 이야기를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대부분의 이론이나 사례는 그를 중심으로 현실의 동태를 살피고 현시점의 해석을 통해 전망을 제안하고 있기에 관련 내용을 듣는다는 것은 논의 시점을 끌어올려 좀 더 거시적인 상황 조망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 명료형 질문: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가장 잘 안 지켜지는 것 중의 하나. 답변자의 단기 기억을 시험하지 않고 간단명료한 하나의 토픽을 가진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질문이 장황해지는 이유는 아직 질문자의  머릿속에 정확한 질문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질문은 포커스가 굉장히 좁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경우나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아차리는 경우는 현장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의 내용은 나의 유경험에서 나온 주관적 판단이라 일반화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허를 찌르는 질문보다는 맥을 잇는 질문이 덜 멋져 보일지 몰라도 일반적인 교육 현장에선 훨씬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고받음이 질문자도 살리고 답변자도 살리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모인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 없이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질문이라는 것이 굉장히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반대로 굉장히 공적인 장치이다. 이러한 공공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면 결코 질문에 실수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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