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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Jul 08. 2020

나눔은 사치 아닌가요?

나눔교육강사 활동을 하며 많은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요즘 학생들 어떻게 살고 있냐고요? 질문 한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바라는 것이 뭐예요?”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답합니다.


“잠이요!”, “자고 싶어요!”


방과 후에도 학원에 과외, 자율학습을 소화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대답입니다. 그런 학생들 앞에서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두어 시간 내내 이야기하는 것이 가끔은 미안할 때도 있지요. 어쩌면 우리나라는 아직 나눔교육이 자리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몇 달 전 먹은 음식에 대해 모두 세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음식들은 분명 내가 클 수 있고,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있지 않나.’ 그것들이 지금의 저를 이루고 있죠. 나눔교육도 이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서둘러 마련한 패스트푸드가 아닌 정갈한 음식을 차려 배달하는 마음으로 학생들 앞에 섭니다. 그러면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곤 합니다.


"나눔이란 무엇인가요? 나눔을 왜 해야 하는 것이죠?" 어느 날 저의 이러한 질문에 한 중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눔은 사치 아닌가요?”


학생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유인즉슨, 시쳇말로 ‘흙수저’인 자신에게 나눌 것이 무엇이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학생에게 제가 말하는 나눔이란 말은 어쩌면 잔인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눔이란 양적 분할의 개념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부재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르게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와 지식이나 감정을 나눌 때 그것이 개인의 빈곤이나 내적 소비를 부추기지 않습니다. 온건한 형태로 전해질뿐만 아니라 그 나눔의 관계를 통해 오히려 더 풍성해지고 두터워지죠. 우리가 말하고 싶은 나눔은 이러한 분리의 영역을 넘어 관계성과 공감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렇게 나눔이란 공존을 위한 균형점을 찾아가고자 하는 역동적인 활동이 아닐까요? 


진정한 나눔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누려 하지 않을 때 개인은 그물코의 관계망 속에서 분리됩니다. 하여, 나눔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 공존의 소박한 양태이며, 오히려 나누지 못함이 자존의 독단적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습니다.


교육 내에 ‘가치 장터’라는 일상의 나눔의 형태를 실천해보는 활동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그 심드렁한 얼굴의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어깨를 주무르는 ‘시간의 나눔’을 열성적으로 수행하고 있더군요. 불과 몇 분 전의 그 심드렁한 표정은 지금의 그에게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저는 그 친구에게 어떤 말로 답변을 할까 고민하며 인상이 굳어 있었는데 말이죠. 저보다 먼저 학생 스스로 답을 찾고 또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 또한 학생을 바라보며 다시금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눔은 결코 빈곤하지 않다는 것을, 나눔은 반드시 함께 있게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원 게시글: http://edu.beautifulstore.org/archives/429?pnu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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