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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Jul 12. 2020

나눔은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창입니다

‘그물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것의 유례를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인드라’는 본래 인도의 수행자들을 지켜주는 신으로 다른 말로 ‘제석천’이라고도 부릅니다. 인드라망은 이 제석천의 궁전에 드리워진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을 말합니다. 그 그물은 이음새마다 투명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주는 관계입니다.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 연결되어있는데, 그렇게 그물코마다의 투명 구슬에 우주 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개인과 개인, 그리고 그것을 넘어 마주하는 모든 세계가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일종의 알레고리겠지요.


때때로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는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먹고 마셨던 우유 한 잔, 바나나 한 개, 커피 한 잔 속에는 저 멀리 다른 대륙 생산자들의 노고가 깃들어 있습니다. 비단 생산자뿐일까요? 생산 물품을 이동하는 물류 담당자, 그것을 관리하는 수입업자, 그것을 판매하는 판매업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기 전부터 이미 많은 이의 신세를 지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듯 그물코를 이해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과 고릴라는 어떠한 그물코로 연결되어 있을까요? 전자기기 속에 들어있는 열에 강한 특수 광물인 콜탄은 대부분 아프리카 콩고에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풍족한 자원이 오히려 내전과 아동노동의 촉매가 되고 있으며, 공교롭게도 고릴라들의 서식지와 콜탄 매립지가 겹쳐 고릴라들의 생명과 보금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이야기,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휴대폰과 고릴라라는 두 대상도 이러한 그물코로 우리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지만, 그 안에서 고릴라의 비명을 일체 듣질 못하는 거리감. 보이지 않는 고릴라의 얼굴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요?


나눔은 이러한 망각의 벽을 깨뜨리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공존을 위한 균형을 찾아가는 나눔은 대상을 홀로 두지 않습니다. 나눔은 ‘너’를 위해 하는 것만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 인(人) 자가 서로 기대어 완성되는 것처럼 네가 없이는 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이어진 실천과 공감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나눔은 나의 차원에서 상대방이 자리 잡고 있는 세계를 여는 비밀스러운 창과도 같을 것입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나눔의 창이 활짝 열릴 때, 활짝 웃고 있는 두 얼굴이 서로를 마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생각보다 가까이 존재합니다.



원 게시글: http://edu.beautifulstore.org/archives/587?pnu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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