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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Aug 10. 2020

아빠의 이야기 육아

 상황 설정의 즐거움       

             

“주말에 아이들하고 뭐 했어요?”     


월요일 아침이면 으레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료들과 주말 사이의 육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얘기를 들어보면 동료들은 키즈카페, 박물관, 놀이공원 등 생각보다 이곳저곳 많이 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아홉 살, 여섯 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이것저것 떠올리다 결국은 이런 대답을 하게 된다.     


“음···. 그냥 집에 있었는데요.”     


이렇게 말하면 동료들은 다시 묻는다. 밖으로 나돌지 않으면서 어떻게 아이들과 집에서 ‘버티냐’고. 사실 버티는 게 아니다. 비법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나는 ‘이야기’와 ‘상황 설정’의 힘으로 그 시간을 채운다.      

         

평소 우리 가족은 외출이 잦은 편이 아니다. 시내와 멀찍이 떨어져 살고 있기도 하고 자가용도 없기에 장거리 이동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원체 사람들이 많은 곳을 힘들어한다. 예전에는 어린 시절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게 좋다는 신념으로 이곳저곳 다녀보기도 했지만, 고생해서 찾아간 곳에서 아이들 반응이 신통찮기라도 하면, “엄마 아빠가 힘들게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너희 정말 이럴 거야?” 하면서 괜한 보상심리로 인해 오히려 아이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조금씩 집 안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거리를 하나둘 찾다 보니 어느덧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몇몇 작가나 학자들은 ‘스토리텔링 교육기법’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것은 오히려 명절에 아이들이 모이면 으레 하던 어르신들의 옛날이야기나 삼촌들의 허풍 가득한 만담에 더 가깝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아빠라는 말 대신 ‘그림 이야기 아저씨’, ‘노래 만들기 아저씨’, ‘동시 창작 아저씨’, ‘상자 제작 아저씨’, ‘한글 교육 아저씨’, ‘모험 아저씨’ 등등 조건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여진다. 내가 함께 놀기 위해 방문한 ○○ 아저씨라고 소개하면 아이들도 적잖이 속는 척 그 역할놀이를 충실히 이행한다. 이런 놀이에 필요한 재료는 즉석에서 발견한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재료에 따라 역할을 급조해내기도 한다. 재료는 물론 다 재활용이다. 모아 놓은 이면지를 사용한다든지, 다 먹은 요구르트 병이나 택배 상자를 그때그때 찾아 활용한다. 발견의 재미도 있고 낯선 재료에 따라 새로운 접근의 상상력도 확장된다.        

       

방법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아이들한테 “엄마 없을 때 몰래 그림 이야기 아저씨를 초대하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이 승낙하면 살짝 현관문을 나서서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른다. 이제부터 상황 설정 시작이다. 그림 이야기 아저씨는 이면지와 각종 펜을 잔뜩 들고 집을 방문한다. 테이블을 꺼내 자리를 잡고 집에 있는 공룡 장난감을 얼추 머릿속에 그려 ‘공룡시대 대탐험’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토리에 따라 다양한 그림들이 이면지를 채워간다. 이미 그려져 있는 그림 위에 몇 가지 선을 덧대면 캐릭터들의 감정과 행동은 또 달라진다. 하이라이트, 악당 공룡을 무찌를 때는 아이들에게 펜을 하나씩 쥐여 준다. 함께 달려들어 다양한 색으로 색을 덧대면서 악당 공룡을 이면지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슬슬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에 싫증을 느낄 때면 미리 생각하고 있던 공룡 인형을 꺼내 그려놓은 그림 속에서 튀어나오게 한다. 증강현실 게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면 또 조금 전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각자 캐릭터를 맡아 한참을 놀 수 있다.        

       

아이들과 자주 하는 놀이 중의 다른 하나는, 사탕을 집어넣은 작은 장난감을 집안 곳곳에 숨겨 놓고 그것을 함께 찾는 보물찾기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급조한 보물지도를 하나씩 나눠준다. 지도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는 위치가 나타나 있다. 물론 해적 아저씨가 보물 찾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고, 선장 아저씨가 나타나 보물 위치에 대한 힌트를 주기도 한다.    

           

간혹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별도로 있으면 일단 이야기를 만들고 도구를 선택한다. 함께 그림으로 그릴지, 역할놀이로 할지, 게임으로 할지 등을 정한다. 내가 아름다운가게에서 학생들에게 하고 있는 나눔과 윤리적인 소비에 관한 이야기도 장난감이나 인형을 가지고 자연스레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내가 일부러 욕심쟁이 캐릭터를 연출해 장난을 칠 때면 아이들이 먼저 나서서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타이르곤 하다. 그 가운데 처음 간단했던 설정이 아이들의 반응에 따라 내용이 확장된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 갈등 요소나 위험 요소가 담기고 아이들은 각자의 역할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그 해결 과정에 참여한다. 결국 욕심쟁이 캐릭터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나눌 때 비로소 다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음 깨달았다’ 고백하면 아이들도 그 사과를 선뜻 받아들인다.               


집 근처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가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간다고 하면 재미없으니 대장 아저씨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설정한다. 우리 집 앞 공원에는 거대한 뱀 아나콘다가 살고 있고 우리는 몰래 그곳을 통과해 무사히 생존 물품을 사와야 한다. 먼저 간단한 장난감 무기를 지참해 집을 나서며 각자 역할을 부여한다. 발이 빠른 첫째 아이에게는 돌아다니며 아나콘다의 위치를 확인하게 하고, 주의력이 좋은 둘째 아이에게는 아나콘다의 흔적을 주변 곳곳에 찾아 분석하게 한다.               


“이것 봐! 거대 아나콘다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잎사귀가 다 말라 버렸어!”(겨울이라 잎사귀 떨어진 공원 나무를 보며)     

“앗, 내가 뱀 허물을 발견했어!” (공원 관리에 필요한 물 호스가 말려 있는 것을 보며)     

“잠깐 조용히 해봐. 지금 아나콘다의 목소리가 들렸어.” (옆 도로 시설 보수 공사 소리를 들으며)     

어디선가 몸을 숨겨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거대 뱀을 찾고 쫓기기를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슈퍼마켓에 도착해 있다.               


매번 이러한 놀이가 부담되면 계속하기 어려울 텐데 나 또한 어린 시절 모험 책을 읽으며 두근댔던 기억, 밤늦게까지 ‘구니스’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 영화를 보던 기억,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같은 동화책을 보며 상상 속 친구를 만들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어 종종 아이들과 함께 흥분해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이야기의 힘이 순간순간 내게 관여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더불어 내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중요 일과는 잠들기 전 누워 이야기를 해주는 시간이다. 실제 경험했던 일에 살을 붙이기도 하고, 내가 읽었던 책의 내용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각색해 전달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는 컴컴한 방 천장을 스크린삼아 핸드폰의 랜턴 기능으로 그림자놀이를 펼치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다른 어떠한 놀이보다 폭발적이다.               


“아빠가 예전에 아주 높은 산에 등산을 하러 갔어(삐죽한 산 그림자). 그러던 중 길을 잃어 어느새 밤이 된 거야. 그런데 어디서 ‘부스럭’ 소리가 나는 거야. 아빠는 너무 무서웠지만 소리가 나는 풀숲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여우가 한 마리 있었어. (여우 그림자) 그런데 그 여우는 보통 여우가 아니었어. ‘변신 여우’였어. 여우는 코끼리로 변할 수도 있고 (코끼리 그림자), 나비로도 변할 수도 있었어(나비 그림자). 근데 여우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거야. 호랑이한테 물려 다리를 다쳐 변신을 못 하고 있다는 거야(호랑이 그림자). 아빠는 얼른 가방 속에 있던 붕대를 꺼내 여우를 고쳐줬어. 그러자 여우는 감사하다며 보답을 하겠다는 거야. 그러더니! 놀라지 마. 커다란 새로 변해서 (새 그림자) 나를 등에 태우고 산꼭대기까지 데려가는 거야. 거기에는 나무 하나가 서 있었는데 (나무 그림자), 거기에 달려 있는 사과를 먹으면 나도 변신을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사과를 너무 조금 먹으면 변신을 못 할 텐데 한번 크게 만들어볼까? “커져라!” 하고 함께 외쳐보자. 하나, 둘, 셋! (주먹으로 만든 사과를 점점 크게)”               


평범한 이야기임에도 눈앞에서 거대해지고 작아지며, 순간순간 모양이 바뀌는 그림자가 아이들에게는 마치 3D 영화처럼 느껴지나 보다. 아이들이 이야기 한 편 한 편에 아쉬워할 때마다 나는 흡사 유명 드라마를 찍는 피디와도 같이 우쭐해진다. 확실한 팬덤이 있으니 진행할 재미 또한 난다.     

          

그림자놀이의 장점은 내용을 시각화할 수 있고 크기와 모양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기에 구성할 수 있는 이야기가 폭넓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뿐만이 아닌 나는 아내와도 대화를 많이 하려 한다. 아무리 보람되다 하더라도 육아는 기본적으로 고되다. 서로 위로가 필요하다. 우리 부부도 아이들처럼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        

            

작년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 안 분위기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막상 입학을 준비하자니 사전에 챙길 것도, 고심할 것도 많아 우리 부부는 심적으로 부산했다. 무엇보다 처음 학부모가 되고 나니 아이의 교육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제한적이고, 많은 부분 학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놀랐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숙제를 봐주거나, 함께 새로운 내용을 공부하는 시간이 부쩍 줄었다.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나의 모습에도 적잖이 실망했다. 나름대로는 아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교육을 하고 싶었는데 이러다가는 그저 아이에게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생겼다.     


또한 학기가 더 할수록 다른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전해 들으니 내심 불안해지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한 곳일 텐데도 다들 자녀를 영어며 수학이며 학원에 보내기 바빴다. 그에 비해 아무런 사교육도 받지 않는 우리 아이가 너무 집에서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부모와 붙어 있어 다른 또래에 비해 발달과정이 늦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결론은 학업이건 발달이건 아이가 느리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결국 속도의 문제이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한글을 아주 못 쓰거나, 화장실 변기에 앉아 변을 보지 못하는 이들은 거의 없지 않나? 많은 만남이 꼭 건강한 사회적 관계로 발전되는 것은 아님을 수차례 반면교사를 통해 접하기도 했다. 정작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놀 기회를 놓치는 이유는 집에만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방과 후 다른 친구들이 죄다 학원에 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부모 입장에선 다른 집 아이가 학원이나 별도의 학습을 하면 자기 아이가 뒤처질까 불안해서라도 이를 따라하게 된다. 은연중에 전이되는 이런 학부모들의 조급증에 정작 아이들만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가끔 어른들이 ‘모든 것엔 다 때가 있다’면서 학습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나는 모든 것에 다 때가 있다면 초등학교 때는 무조건 잘 노는 것이 최대의 학습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첫째아이 친구 중에서는 건강했던 아이가 학원에 시달려 시름시름 아프다거나, 학습 강요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의 눈썹을 쥐어뜯는 이상행동을 하는 아이도 있다 들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이야기다.             

  

돌아보기에 내가 경험한 유년 시절은 교과지식을 배우는 시기라기보다는 직접 세계와 관계하고, 세계를 발견하며, 스스로 그것에 이름과 그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시기이다. 건강한 만남을 경험하는 것, 그 장을 확보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이러한 세계를 의미 있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앞에 존재하는 대상(사물)과 직접적인 대화(관계)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동물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말 못하는 동물이라도 순수하게 감각적으로 상대의 즐거움과 고통을 읽어내고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람 사이의 소통이라고 하는 것 또한 타인의 사고 영역을 상상하고, 가늠하며, 느끼고, 수용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기 아이들에게는 더욱 상상력이 발현되는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야기는 최초의 ‘나’와 ‘세계’가 주고받는 아주 기본적인 언어 관계의 방식이다. 세계와의 건강한 만남을 통해 공감이 일어나고, 그 공감을 기반으로 대상과 타인과의 나눔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자유롭게 상상하며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놀이의 시간은 아이들뿐 아니라 이 세계와 관계 맺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해당 글은 격월간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2019년 2월 호에 수록된 기고문 임을 밝힙니다. 약간의 내용 수정 과정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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