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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Aug 29. 2020

[너를 통해 나를] 수박수박수

2020년 늦여름 / 아직 수박이 맛있게 느껴지는 계절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 넓은 바다, 사람이 가득한 수영장, 찬 물살의 계곡, 지인들과 떠나는 휴가 등등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나는 가장 먼저 차가운 수박이 생각난다.


우리 가족 중에서도 아버지와 나는 유난히 수박을 좋아했다. 과장된 기억일지도 모르겠지만 한창 때는 앉은자리에서 수박 반 통은 거뜬히 먹어 치웠던 것 같다. 매 여름 끝물에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이 한 동안 수박을 먹지 못한다는 아쉬움이었으니 그 애정이 유난하기는 했다. 어쩌면 여름이라고 별다르게 바캉스나 휴가를 가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지난 회 [너를 통해 나를 - 저 바다에 누워]를 참고해 주시라) 여름이라는 계절의 특수성을 누리기에 제철 과일만 한 것이 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저렴한 가격에 충분한 수분과 당분을 얻을 수 있는 수박은 내겐 언제나 여름철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처럼 느껴졌다.


왜 수박이 좋은 것일까? 일단 수박의 거대함이 좋다. 다른 과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사이즈! 호랑이 같이 강렬한 줄무늬! 쩍 하고 벌어질 때 들리는 호쾌한 사운드! 그 안의 츄릅 츄릅 과육의 식감! 찬 수박 껍질을 얼굴에 비비면 또 얼마나 시원한가. 옛날 어른들은 수박껍질로 무침까지 해 먹었다. 이런 수박, 참 착하다.


수박에 관련한 몇몇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우리 가족과 아버지 친구분 가족이 동반으로 남이섬을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놀러 가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차가 한 대라는 것, 그리고 그 차는 영화 <택시기사>에 나오는 바로 그 전설적인 자동차 ‘브리사’였다는 것, 그리고 진짜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족 합쳐 인원이 10명이라는 사실이었다. 4명의 성인 남녀와 6명의 아이들이 그 작은 차에 얽혀 탔다니... 어느 분의 아이디어인지, 뭐 거의 기네스북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 모양새로 어떻게 갔는지는 자세히 기억은 없지만 어찌어찌 도착해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마침 후식으로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수박을 먹음직스럽게 잘라 내시는 것이 아닌가(잠깐! 그런데 어디 공간이 있다고 수박까지 실었던 거지?). 모처럼의 여행에 흥분했던지 혹은 9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그랬던지 나는 수박을 너무 급히 또 많이 먹어버렸다.


그 순간, 갑자기 그 맑던 하늘이 점점 어둑해지더니 하나 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장대비로 변한 비가 오붓하게 앉아 있던 두 가족을 질투하며 돗자리를 쓸어 가던 바로 그 찰나! 나는 갑자기 雪四의 기운을 느끼며 새하얀 눈꽃(雪)이 내 사방(四)에 퍼진 듯 시야가 모두 하얗게 되는 신묘한 경험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온 가족이 허둥지둥 짐을 챙겨 차로 달려가는 동안 나는 어머니께 나의 위급한 상황을 전했고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은 것... 은 아니지만 "그러게 왜 욕심부려 먹었냐"라고 무척 혼났던 기억이 있다. 재래식 화장실에 눈물을 찔끔이며 앉아 있는 동안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적당할 때 그만'이라는 나의 인생 좌우명은 그때 무의식적으로 성립된 것은 아닌지...


또 다른 기억은 고시생이라 쓰고 백수라고 읽던 시절에 도서관이 너무 덥다는 핑계로 집에 콕 박혀 몰래 보던 일본 드라마 <스이카(수박)>다. 본 이들도 있겠지만 이 드라마는 큰 임팩트의 에피소드가 없다. 적당히 약하고 적당히 문제 있는 보통 사람들끼리 수박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변변찮은 이야기를 변변찮게 화답하는 평범한 일상을 비춘다. 그런데 그때는 또 왜 그렇게 그런 것이 고맙고 좋았는지 모르겠다. 범인들도 각자만의 소중한 서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드라마가 일깨워줬다고나 할까? 생이 막막하고 자존감이 무척 떨어져 있던 시기라 <수박>을 통해 알 수 없는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동안 맛을 잊고 있던 수박에 대한 애정도 다시 상기시켜줬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어쩌면 억눌려 잊고 있던 생의 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모니터 앞에 눈물을 찔끔이며 앉아 있는 동안 '알고 보면 인생 별거 아냐'라는 또 다른 나의 인생 좌우명은 그때 무의식적으로 성립된 것은 아닌지...


음... 써보고 나니 별로 수박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구나.


어찌 되었건 신기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아버지와 나처럼 우리 아이들은 수박을 무척 좋아한다. 이른 여름부터 늦여름까지 "수박 수박"을 입에 달고 다닌다. 분명 여름은 일 년의 사분의 일일 텐데 일 년의 반 정도는 수박을 먹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수박을 좋아하는 손자를 위해 할아버지가 끊임없이 수박을 사다 나르시기 때문이다(지구온난화의 폐해와 하우스 농법의 위대함이 인간의 의지와 함께 적절히 믹스된 결과?). 이제 우리 아버지는 예전만큼 수박을 많이 드시지 않지만 아이들이 허겁지겁 수박을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신가 보다. 하긴 열심히 수박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배탈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다(부디 나의 예민한 장은 닮지 말길). 아이들의 배는 금세 수박만 해진다. 그렇게 먹고도 아이들은 내게 묻는다.


“아빠, 우리가 심은 제주도의 수박 다 자랐을까? 한 번 먹어보고 싶다.”


몇 년 전, 제주 한 달 살기 하며 머물렀던 집 마당에서 수박을 먹고 자신들이 이리저리 뱉어냈던 수박씨들을 말하는 것이다. 매일같이 먹고 뱉어냈으니 말도 안 되지만 확률적으로 하나쯤 자랐을 것도 같다.


“그럼. 아마 덩굴 가득 수박이 쌓여 있을 거야. 내년에 먹으러 가자.”


미소를 보아하니 아이들은 향긋한 수박향과 함께 이미 내년 여름으로 향하고 있나 보다. 그렇지. 커다란 수박은 이렇게 먼저 우리 마음속에서 조금씩 영글어 가는 것이지.


문득 온 가족이 수박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수박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맛도 맛이지만 수박에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끼어들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수박은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가 줄기차게 사 오시는 이유 또한 수박이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함께라는 기억'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수박아, 참 고맙다. 자 다 같이 수박에게 박수박수박!!




'온수'의 다음 이야기는 9 19에 공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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