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 / 한해의 계획을 적어 내려갈 즈음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뜻하지 않게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가정마다 여러 어려움이 존재하겠지만, 특히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힘겨움이 이만저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체와 인지의 발달을 위해 외부활동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더 솔직히 넘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그나마 이곳저곳 함께 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동 자체가 막히니 종종 외부의 도움을 받던 식사 준비와 그 뒤처리, 교육과 놀이 콘텐츠 등등이 모두 오롯이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무엇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집도 사정은 비슷한데 그나마 다행히도 3살 터울의 두 아이들은 이미 집 안에서 노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혹시 그 이유가 궁금한 사람은 나의 브런치 '아빠의 이야기 육아'를 참고해주시라: https://brunch.co.kr/@blur0708/36). 많이 지루해하지 않냐고? 전혀 그렇지 않고 둘이서 정말 잘 논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꺼내와 만들고, 규칙을 정하고, 내용을 구성해 자기들끼리 웃다가 울다가 한다. 헉헉 댈 정도로 힘에 부칠만큼 논다. 문득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학창 시절 교실 맨 앞에 앉아 쉬는 시간마다 문제집을 풀던 우리 학급 반장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아이들은 놀이에 정말 열심히다.
옛말에 '노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로서 마음이 느긋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런데!
또 옛말에 '공부도 때가 있다'라는 말도 있다. 부모로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어느 하나 귀담지 않을 말이 있을까. 속담이란 것이 생의 과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임상실험을 거쳤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정작 당사자가 되면 마이동풍,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학창 시절 어머니가 공부 좀 하라고 했을 때는 그리 게을리 있다가 뒤늦게 대학원 공부를 한답시고 끙끙대고 있는 요즘의 나를 보면 정말 공부도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종종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확한 언론&미디어&학술 및 지식정보 사이트인 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사연을 보여줄 때가 있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이런 학습 스케줄 괜찮나요?" 스크롤바를 슬쩍만 내려보아도 한눈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열된 빡빡한 학원 일정이 눈에 들어온다. 거의 내 고등학교 시절 스케줄 같다(물론 나는 고등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느긋하게 보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반성의 의미로 공부도 때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잖는가). 이런 나의 놀라움에 '묻고 더블로' 놀라움을 주었던 것은 그 사연이 이런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아니라 남들에 비해 적을까봐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들은 어떤 것을 더 추가로 시켜야 한다는 조언들이 가득했다.
우리 큰 아이는 이번에 초등 고학년이 되고 둘째는 막 입학을 하지만 지금껏 둘 다 제대로 학원 한번 다닌 적이 없다. 늘 집에서 열심히 놀다가 억지로 어억~~~지로 10여분 공부하는 정도이다. 그런 상황이니 사실 아주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속담보다 무서운 댓글...
그래도 아내와 나는 공부만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에도 때가 있다'는 발달심리학 이론에 따라 아이가 자랄 때까지 적어도 3년간은 밀착된 관계를 통한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물론 그 3년이 10년이 될지는 몰랐지만), 초등시절에는 공부보다는 놀았던 경험이 주로 기억에 남았으면 했기에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다행히도 제법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을 보면 아주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게 맞는가 싶은 순간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이러한 나의 고민 가운데 커다란 인사이트를 주었던 분이 계신데, 유명 교육학자나 심리학자가 아닌 바로 나의 장인어른이다. 나의 장인께서는 70세가 넘으셨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인테리어 사업을 하시고 계시다. 주중에는 정말 열심히 일하시고 주말에는 빠짐없이 산이며, 바다며, 들이며, 강이며 떠나신다. 너무 일만 하면 오히려 일을 오래 할 수 없다는 지론인 것이다. 60세만 넘어도 은퇴하는 시절인데 70세가 넘어서도 오히려 나보다 더 건강하신 비결은 '잘 노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힘든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면 (적어도 나라면) 쉬는 날에는 완전 '방콕' 하거나 소파와 물아일체가 될 만도 한데 장인께서는 오히려 새벽부터 차를 몰고 나가신다. 그래서 산에 올라 성인 남성만한 칡을 캐고, 그것을 들고 와 자르고, 칡물을 만들고, 온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신다. 아니면 대관령까지 차를 타고 달려 고원에서 배추를 뜯어 싣고 와 집집마다 나눠주시기도 한다. 나로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잘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장인어른의 놀이인 것이다. 어느 날은 함께 놀러 가 땡볕에서 나물을 캐는 장인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딱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놀 때의 바로 그 뒷모습이었다. 그 놀이가 스트레스를 줄여 마음을 평안케 하고, 그 놀이가 몸을 움직이게 해 신체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심신의 '쾌(快)'함을 놀이로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그 쾌함을 일과 공부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면 능률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노는 것은 때가 없다. 평생학습이 아니라, 우리는 이제 평생 놀잇감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많이들 하는 이야기지만 앞으로 우리는 '호모 파베르(노동하는 인간)'가 아니라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놀면 뭐하니?'
그리 생각하면 이 질문은 조금은 틀렸다. 노는 것이 바로 뭘 하는 것이다.
"얘들아~! 아빠랑 놀자~아!"
'온수'의 다음 이야기는 1월 16일에 공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