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 만개의 꽃을 기대할 무렵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엄마 아빠, 잠이 안 와."
엄마나 아빠가 함께 있어야 겨우 잠이 들던 아이들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작년 말부터 따로 재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두 아이는 우리 부부가 있는 방으로 쪼르르 달려와 잠이 안 온다고, 같이 자자고 조르곤 한다.
"가만히 조용히 있으면 잠이 올 거야." 딱히 대안이 없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도 질세라
"가만히 조용히 있어도 잠이 안 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자꾸 무서운 꿈을 꿔."
너무 엄살을 부리나 싶어 '아무래도 키가 크려고 그런 꿈을 꾸나 봐'라고 대답하려다 문득 입을 다물었다. 사실 나 또한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의성과 타의성이 뒤섞인)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의 지루함과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 또한 쉽지 않은 적응기간을 겪고 있다는 것 또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불면과 관련한 몇몇 추억들이 떠오른다. 학창 시절, 숙박을 하는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 가면 다들 들뜬 마음에 떠들다가도 하나 둘 친구들이 잠들어 어느 순간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가뜩이나 집에서도 잠들기 어려운데 낯선 곳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중압감은 어린 나에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내 맘도 모르고 어찌나 그렇게 얄미울 정도로 '맛있게' 잠을 자던지... 그때마다 나는 억울한 감정에 휩싸이고는 했다. 어찌 보면 고작 몇 시간 더 못 자는 정도의 수준일 텐데 당시의 나는 그것이 엄청난 손해처럼 느껴졌다. 그런 조바심에 의해 그나마의 졸음도 달아나는 그 악순환을 끊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일상적인 추억은 나의 누이와도 연관되어 있다. 어린 시절 방을 같이 쓰던 큰 누이에게 나는 매일 내가 잠든 다음에 자 달라고, 나보다 먼저 잠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누이는 수험생인 자신은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잘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누이가 나보다 늦게 자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공부는 시작할 때 졸리고, 모든 시험 때 방영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다 재미있고, 다이어트에 막 돌입했을 때 입맛은 도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가히 인체와 상황의 빚어내는 신비적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런 사실을 어린 시절에 직감적으로 깨달았다면 일부러 밤에 공부해 성적도 올리고, 아니면 잠이라도 잘 잤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 나는 그저 지금과 같은 몽상가가 되었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나도 느즈막까지 부모님 품에서 잠을 잤다. 역시나 부모님도 코를 골며(이 사운드가 주는 압박감...) 맛있게 주무시고, 그 한가운데의 나는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한낮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커다란 시계 초침 소리를 하릴없이 듣고 있어야만 했다. 겁이 많아 뭔가가 방 안에서 으스스하게 움직일 것만 같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왜 하필이면 그럴 때 친구들이 해주었던 귀신 이야기가 이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그 이야기와 바통 터치를 하듯 잠은 이미 내게서 멀리 떠난 후였다.
그런 불면의 상황이 반복되어 일상이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사건이 있다. 그날도 거의 밤을 꼬박 새우고 있었는데 그 답답함이 극에 달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부모님이나 누이를 깨울 수 없고, 어딘가에 홀로 가있을 방도 없고(사실 용기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막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 누군가가 이 순간 나와 함께 깨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을 바로 그때...
'쓱쓱'
이건 무슨 소리지? 갑자기 겁은 밀려왔다. 다시 쓱쓱. 몇 차례 소리가 이어지자 용기 내 자리에 일어나 소리의 근원지인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창 밖 한편에는 어스름 여명이 오르고 있었고, 그 빛을 등지고 한 사람이(아마도 환경미화원 선생님이었을 듯하다) 열심히 도로를 커다란 비로 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마찰 소리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것은 단순한 비질 소리가 아니라 그 당시 나에게는 그 거대한 침묵을 깨는 희망의 소리,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소리처럼 들려왔던 것이다. 나 여기 있다고, 너만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고...
더는 혼자는 아니라는 것, 이 시간에 누군가가 나와 함께 깨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이런 추억으로까지 생각이 미치자 잠들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군대에서 배운 신통한 의학 지식인 '플라세보 효과'였다. 나는 바로 꾀를 내었다.
"얘들아, 아빠가 드디어! 잠이 잘 오고 나쁜 꿈도 꾸지 않는 마법의 가루를 발명했어!"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대신에 이건 매일매일 새로 만들어야 하고, 만든 후에는 바로바로 입안에 넣어 녹여 먹어야 해."
"뭘로 만드는데?"
"음... 그날그날 달라. 그 순간 우리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들의 도움을 받아야 해. 일단 오늘은 은하수 끝에 있는 별의 빛을 조금 가져오고, 저기 날아가는 혜성의 꼬리를 조금 떼어 오고, 들판 한쪽 나비의 날갯짓으로 이는 바람을 조금 가져오고, 음... 우리가 좋아하는 달콤한 수박의 향기도 조금 끌어오자."
"말하고 가져와야지 그냥 가져오면 걔네들은 어떻게 해!"
"당연히 물어봤지. 너희들이 기분 좋게 자면 자기들도 좋다 그랬어. 자, 먹어 보자."
손을 털어 아이들의 입안에 살살 뿌려 본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애써 잠이 들려 노력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과연 마법의 가루 효과는 어땠을까?
"아빠, 아빠! 정말 신기하게 좋은 꿈을 꾸었어!"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외친다.
"정말이라니까. 오늘 저녁에도 또 뿌리고 자자!"
마법의 가루의 효과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잠이 든 순간에도 우주의 한 편에서는 거대한 운동이 일어나고, 지구 반대편의 나비는 하늘을 날아오르며, 파도는 일고, 누군가는 글을 쓰며... 세계는 여전히 생동하고 있다. 밤은 그렇게 고요해도 생명의 박동은 지금도 시계침 소리보다 더 요란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마법의 가루는 어딘가 누군가가 나와 함께 깨어있고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안도감을 아이들에게 주기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 우겨 생각해보고 있다.
오늘도 아이들이 '맛있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질투하지 않는다. 고요해 보여도 아이들은 그 순간에도 커다란 에너지로 요동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부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앞으로 자라는 아이들도 꼭 알았으면 한다.
'온수'의 다음 이야기는 4월 17일에 공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