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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May 08. 2021

따릉이를 타며 국가의 역할에 관해 묻다.

최근 지인의 추천을 받고서 뒤늦게 ‘따릉이(서울시 공공자전거 서비스)’에 가입해 이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차가 없어 대부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저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지요. 평소 이동 동선을 짜기가 애매한 곳이 많았거든요. 걸어가기는 조금 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면 좀 돌아가야 하는 경우들 말이죠. 그래서 몇 번이나 자전거를 구매해서 이동할까 싶었지만, 그전에도 몇 번 뜻하지 않게 오래 놓아둔 자전거가 고장이 나거나 사라진 경험에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따릉이는 바로 그런 저의 고민을 아주 말끔하게 해결해주었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따릉이를 이용하고 보니 생각보다 역 주변만이 아닌 주거 공간 곳곳에 따릉이 대여소가 많이 있더군요. 덕분에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따릉이를 타는 적극적인 이용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장선거 이후로 시장의 출신 정당이 바뀌게 됨에 따라 따릉이 사업도 재고되는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주변에서 왕왕 듣고는 했습니다. 다들 우스개로 한 말이겠지만 괜한 불안을 증폭시키듯 ‘따릉이 1년 적자 100억’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어요. 정말 따릉이는 시나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잘못 기획된 사업일까요?


따릉이를 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따릉이 사업을 과연 수익성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 모든 공공사업을 수익구조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물론 이익이 나야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공사업마저 수익성을 기반으로 할 때 일정 기간 사업이 안정적으로 안착할 때까지 유지될 수 있는 사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지금, 당장’이라는 관념이 지배하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그의 저서들을 통해 인문주의적 기초를 가진 정치적 국가와는 다른 생물학적 본성을 기반으로 한 경제적 사회(Economic Society)의 등장을 경고하고 있어요. 사회의 지향점이 수익과 이윤으로만 흐르면 실제로 그 안의 사회 구성원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오래전부터 명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죠.


주변에는 저와 같이 따릉이 사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이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공공사업 중에 이 정도로 만족도가 높은 사업이 얼마큼 있을지 되짚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시장이 이윤을 적극적으로 좇을 때 오히려 국가는 그와는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공성의 확대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 안의 공공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에요. 미국의 생태학자 가렛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지에 기고한 짤막한 글을 떠올리면 공적 소유는 이기심 혹은 나태로 인해 공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죠. 이에 대한 해결 방식은 공유지의 사유화 전환입니다. 그 땅을 개인 단위로 쪼개면 효과적으로 관리가 된다는 것인데요. 하지만 사유화의 확대가 과연 공유지를 ‘지키는 것’일까요? 오히려 그 반대는 아닐까요? 사유물이라는 울타리는 다른 대상이 쉬이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어느 한순간 공공으로 향유하고 있던 많은 것들이 내가 비용을 지불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너무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 안에서 공유지에 대한 관점은 ‘누구의 것도 아니니 내가 먼저 소유한다’에서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에 함께 지켜야 한다’로 점차 전환되어야 할 것 같아요. 


언제부터 정부나 시의 수장은 CEO, 국가는 이익을 따지는 영리기업이 되어버렸을까요? 따릉이의 수익구조는 전혀 다른 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환경이 아닌 ‘필환경’적인 세상에서 환경 인식의 확대, 소유에 대한 인식 전환, 공공의 재화와 공간 구성을 통한 공공성의 확장 등 이 사업은 그 자체로 미래지향적인 교육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육마저 시장에 의존하는 지금과 같은 세상 속에서 그야말로 저렴한 가격으로 시민들에게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체험 기회를 따릉이는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성을 지닌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수정되어 게재되었습니다. (http://omn.kr/1t5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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