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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Jun 11. 2021

기도와 금식

생의 변화의 핵심


예수는 변화산에서  내려왔을  그를 다급히 찾는 제자들과 무리를 보았다. 이유인즉슨, 그의 제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귀신들린 자를 치료하고자 했는데, 귀신을 쫓아내기는커녕 도리어 애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피로했던 예수는 인간적인 마음에 그들에 짜증 섞인 말을 꺼냈다.


"언제까지 일일이 알려드려야 합니까? 제가 계속 당신들 곁을 지키고 있을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 일단 그리로 가시죠."


그는 제자들을 따라 현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얼굴이 퍼렇게 질려 있는 제자들이 몸을 휘젓는 귀신 들린 자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예수는 어두운 낯빛으로 귀신 들린 자를 치료했다. 제자들은 자신이 이와 같이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예수에게 물었다. 다분히 그를 원망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분명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때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잘 살펴보십시오.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류를 행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수가 제자들에게 요청했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기도와 금식...


그것은 개인의 욕망을 비우는 행위의 일종이다. 금식은 육체의 만족을 충족시키지 않고, 기도는 마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는다. 의도적인 공백을 두는 것, 지속적으로 공복상태를 유지하는 것, 다 채우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생의 변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적을 통해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명성을 충족시키고자 했던 제자들의 욕망에 일침을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우리가 사는 세상의 메시지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라’는 것으로 일원화되고 있는 듯하다. 심적이건 물리적이건 빈 공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노는 땅(공터, 공유지)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자투리 공간이라도 개발해야 그에 따른 생산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동네마다 공터와 녹지가 사라져 간다. 네 것도 내 것도 아니던 그런 공간들 말이다. 티브이 속 광고 또한 우리에게 적극적인 소비를 통해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 넣으라고 강요한다. 비워두면 그만큼 뒤처지는 것이라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이런 세상의 판 속에서 예수의 메시지는 우리네 삶을 문득 되돌아보게 한다. 욕망하는 우리에게, 무언가 채워 넣으려는 우리에게, 무언가 보여주고 으스대고 상대화하려는 우리에게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그 어떠한 인간적인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귀신에 붙들려 살고 있는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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