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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Jun 23. 2021

공적언어와 사적언어 사이

건강한 담론을 위한 조건


적지 않은 회사가 업무 효율과 정보 보안,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목적으로 개별의 그룹웨어를 구축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가 그 안에서 오가고 있다. 이처럼 업무적 협력과 소통은 과거의 직접 대면 형태를 넘어 점차 온라인상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구현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펜대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부터 비대면의 세계는 대면 세계를 압도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온라인 공간 안의 담론 구현은 비단 HR담당자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구성원의 공통적인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단순히 사무적 에티켓을 지켜달라고만 요청할 수 없는 첨예한 의견들이 내부적으로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리더 단위에서 쉽게 정리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한 사내문화는 점점 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해당 방식은 장기적으로 내부 리스크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온라인 공간 안에서 우리는 다양하고도 개인적인 의견들이 적극적으로 개진되는 것을 지향해야 할까? 혹은 지양해야 할까? 


예를 들어 어떠한 회사의 그룹웨어의 공지글에 해당 정책 결정에 대한 반발로 한 개인이 원색적인 비난의 댓글을 달았다고 가정해보자. 몇몇 구성원들은 그의 표현에 동의할 것이지만 몇몇 구성원들은 언어의 규범성을 논하며 그를 비난할 것이다. 이러한 비난은 타당할 수 있다. 공적 공간에는 그에 따라 통용되는 규범적 성격이 있을 것이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공공의 영역에서는 타인을 쉽게 힐난해서도 안 되고, 의견 또한 정확한 정보와 개연을 기반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이뤄지는 ‘공적언어(公的言語)’의 담론은 우리에게 다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공적 언어란 ‘공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언어’라고 국어 사전은 설명하고 있지만 과연 공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가 전제되어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영역 대부분이 타인과 밀접하고 있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대부분은 공적언어이며, 사적언어에 해당하는 영역은 기껏해야 혼잣말이나 개인 일기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과연 사적언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되묻게 한다. 개인의 유일하고 고유한 경험을 지시하는 사적 언어의 규정을 고려할 때 사적언어는 애초에 존재하기가 어렵다. 앞서 혼잣말이나 일기의 예시처럼 해당 언어는 그 누구의 귀에도 들리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언어는 언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자리에서 공적언어를 운운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공적언어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다. 대표적인 공적언어로 언론과 정치 언어를 꼽을 수 있을 텐데, 그 언어들이 구체적으로 지시할 수 없는 공백들이 많다는 것은 체감적으로 알고 있다. ‘엄중히 살펴보겠다’라거나, ‘예의 주시한다’라는 말은, 실제적인 행위가 누락된 공적언어들이다.


여러 학자들이 표명하고 있는 공적언어에 대한 우려 또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규격화되고 절대화된 언어는 일종의 권력으로 군림할 수 있고, 동시에 사적언어를 공적언어에 귀속시키는 문제 또한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별의 목소리들은 정형화되고 공식적인 담론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돌아보면 온라인상의 다소 거친 의견 또한 조직의 수용성을 가늠하거나 상호 예의적인 측면으로 다뤄야 할 영역이지 그것이 공적 틀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틀렸다거나, 배제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해당 창구가 개인감정의 배설창구가 되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닐 것이다. 


결국 담론의 건강성은 그것의 절대량과 지속성 여부에 달려 있다. 다양한 사적언어의 발굴을 통해 공통의견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춰야지 빠른 결정 자체가 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섣부르게 논의가 정리되는 이유는 의견의 풀 자체가 빈약할 때 나온다. 그렇기에 구성원들이 자기검열을 뚫고 적극적인 의견 표출을 통해 중론을 만들어가는 내부적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의견은 자연스럽게 자정의 효과를 지니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사회적 성격을 ‘언어게임’이라고 표현하며 선험적 언어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의견은 우리의 언어가 공통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언어게임이 우리네 생활양식의 일부라고 인정할 때, 해당 의견은 언어의 무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 공통의 사회적 언어로서의 가능성 또한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정적인 공적언어가 아닌 동적인 사적언어의 발굴과 조율 과정은 비단 회사 그룹웨어 안에서만 고려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다각적인 참여 영역이 확대되어 가고 있는 학교, 더 나아가 사회 영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툴과 도구들이 기술적으로 보완되고 동시에 개발되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드러난 언어 속에 쉬이 드러나지 않는 개개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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