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자본을 만들어 내는 '믿음'에 대한 방법론
늦은 시각,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내가 근무하는 사회적기업에서 큰 행사가 있어서 늦게까지 관련 마무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혹시 몰라 부연하자면 '사회적기업'이란 비즈니스모델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뜻한다. '우리는 빵을 팔기 위해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라는 미국 루비콘 제과의 슬로건은 사회적기업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미션과 이윤의 추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기에 사회적기업 안에서는 매일 이상과 현실 간의 싸움이 이어진다. 오늘의 나도 이와 같은 고단함이 없지 않았지만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일하는 보람은 무엇보다 나의 노고가 '공공성의 증진'에 기여한다는 것에 있기에 스스로 위로하며 서둘러 피로를 떨치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굳은 마음과는 달리 뱃속의 허기는 오늘따라 더욱 물러설 기세가 없다.
문득 버스 창가 너머 닫힌 상점들 사이로 불이 훤히 켜져 있는 한 빵집을 발견했다. 평소 내리는 정거장과는 몇 정거장 차이가 났지만 나는 홀린 듯 버스 하차벨 눌렀다. 심야영업을 하는 빵집은 별로 들어본 적은 없으나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작은 빵집의 외관은 평소 운영하는 모습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다만 그 안에 사람의 인기척이 없을 뿐... 혹시 몰라 출입문을 만지니 스르르 문이 열린다. 하지만 그곳에는 점원도 제빵사도,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될 빵만이 버젓이 매대 위에 놓여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확인한 안내판에는 놀랍게도 심야에는 무인으로 운영을 한다는 공지가 적혀 있다. 원하는 빵이 있으면 상응하는 가격을 카드 단말기에 맞춰 계산하거나 계좌를 이체하고 준비된 봉투에 담아 가면 되는 간단한 방식인 것이다.
나로서는 반가운 내용이었지만 동시에 '도난이 있으면 어쩌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CCTV는 있을 테지만 그것을 매일 일일이 확인하고 신고하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아마 빵 만드는 것보다 훨씬 힘들지 않을까?).
생소한 것이 많았지만 나는 당장 먹을 빵이 필요했으므로 공지에 쓰여있는 대로 셀프 계산을 하고 두툼한 브리오슈 식빵을 하나 사 왔다. 집에 도착해 식빵을 살짝 전자레인지에 돌려 냉장고 안의 차가운 잼과 함께 발라 먹으니 다른 어떤 내용물도 필요 없었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은 은은한 버터 향이 좋았다. 하지만 빵의 맛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그 동네 빵집의 운영 방식이었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한 나는 며칠 후 조금 이른 시간에 다시 그 빵집을 찾았다. 설마 24시간 무인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겠지? 다행히도 빵집에 도착하니 사장님(이자 제빵사)으로 보이는 이가 홀로 열심히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그는 가볍게 인사하고서는 묵묵히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사장님을 직접 만나면 간단히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몇몇 질문 거리를 생각해 놨다. 하지만 막상 방문하니 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돼 망설여졌다. 내가 매대 앞에 우물쭈물하고 있자 보다 못한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뭔가 찾으시는 빵이 있으세요? 제가 그때그때 만들어서 내어놓는 방식이라 여기 없으면 추가 재고는 없는데..." 비슷한 일이 제법 많았는지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제가 지난번에 식빵을 사갔는데 맛있어서 하나 더 사려고요." 나는 이때다 싶어 말문을 열고는 곧이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밤에 방문했더니 무인으로 운영하시더라고요. 제 장사도 아니지만 도난이 걱정돼서요."
"아, 동네 빵집인데요 뭘."
툭 내뱉듯 대답을 마치고 그는 곧 일에 집중했기에 나는 더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지난번과 같이 브리오슈 식빵을 하나 봉투에 담아 결제를 하고 빵집을 나왔다.
걷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사장님이 말한 '동네 빵집'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동네 빵집에 무엇이 볼 것이 있다고 도둑이 들겠냐는 의미일까? 어차피 서로 얼굴 아는 동네 빵집이라 큰 도난은 없다는 뜻일까? 여러 의미 분석이 가능한 말이지만 그 가운데 나는 문득 직업병을 버리지 못하고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사장님의 말을 해석해 봤다.
일반 프랜차이즈와는 달리 '동네 빵집'이라는 의미는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민들과의 유대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고민의식이 사장님에게는 있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빵집이란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시간에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어야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개인 노동시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잠도 안 자고 사장님이 카운터를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한쪽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화합과 공존은 허구일 뿐이다.
그렇기에 사장님은 과감히 일정 시간을 무인으로 운영하는 것을 결정했다. 미리 심야 판매 분량의 빵을 생산해 진열하고 계산 방법을 적어 놓는다. 늦게 퇴근한 동네 주민은 들러 나름대로 구매를 하고 결제를 하고서는 귀가한다. 물론 해당 방식에 말은 많이 안 터라도 운영자 입장에선 하소연하고 싶은 일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결국은 믿음과 신뢰의 문제다.
나는 공동체와 지역의 문제는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생각한다. 최근 들어 늘어난다는 도난에 대처하기 위해 생협 매장이나 채러티숍 등의 사회적경제 영역의 매장들도 CCTV를 확대하고 으름장을 놓는 멘트를 곳곳에 게시하던데, 차라리 나는 신뢰 마케팅의 영역을 확장 시키는 방식으로 반대 급부를 억제 시켜나가야 한다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이라 함은 믿음과 신뢰라는 사회자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믿음을 주기 위해는 먼저 믿어야 한다는 단순한 방법론을 이 작은 가게가 먼저 분투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이 뭐 별것인가?'
동네 빵집을 통해 이렇게 또 사회적경제를 배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4f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