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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람 Jul 10. 2024

세렌디피티(serendipity)

근무중단 + PAD 4m 3w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멜로 영화가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100일 전 부터 설레는 크리스마스 처돌이가 된 이후로 한동안 겨울에 크리스마스 관련 영화들을 섭렵했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봤던 영화 중에 하나이다. 원래 만나고 있던 연인들과는 헤어지고 운명이라고 생각한 사람을 다시 만나려고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의 흐름이 공감이 되지는 않아 아쉬운 면은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최적의 영화였다. 영화의 결말은 '의도치 않게, 우연히 얻은 (좋은) 경험이나 성과' (출처 : 나무위키, '세런디피티') 라는 단어의 의미와는 다르게 결국 우연이 아니라 직접 노력해야 무언가를 얻는다는 교훈을 줬던 영화이다. 


원래 이 단어의 유래가 궁금해져서 한번 찾아봤었는데, 나무위키 검색 창을 통해, 이는 아래와 같은 설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정치인 이자 《오트란토 성(The Castle of Otranto)》의 작가인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로 알려져 있다. 1754년,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세렌디프의 세 왕자(The Three Princes of Serendip)' 비유를 들었는데, '우연성과 재치를 통해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는 모습'의 의미로 사용하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소 의미가 변화하여 '우연히, 뜻밖에 얻는 행운'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었다.


아래는 그 설화의 일부 내용이다. 


'스리랑카의 왕이었던 지아페르는 아들로 현명한 세 왕자가 있었다. 왕은 권력뿐만 아니라 왕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들을 물려주려 했고, 자신은 명상을 하기 위해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세 왕자는 이를 거절하고 왕은 세 왕자들에게 지혜와 경험을 쌓게 해 줄 의도로 세 왕자를 일부러 추방시킨다. 방랑을 하던 세 왕자는 우연히 낙타가 지나간 흔적을 보게 되는데, 이후 낙타를 잃어버린 낙타 주인을 만나게 된다. 세 왕자는 그 낙타가 절름발이고, 한 눈이 멀었으며, 이가 빠졌고, 등에는 임신한 여인이 타고 있으며, 한쪽 옆구리엔 꿀단지, 다른 쪽에는 버터 단지를 달고 있었지 않냐고 이야기하자, 낙타 주인은 세 왕자가 낙타를 훔친 것으로 의심하여 그곳의 왕인 베라모 왕에게 고소한다. 베라모 왕은 '어떻게 그 낙타를 실제로 본 적이 없으면서 낙타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아맞혔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왕자들은 그렇게 추측한 근거에 대해서 말해준다.


    낙타가 풀을 먹고 지나간 흔적에서 한쪽 풀만 먹었으니 한쪽 눈이 멀었음을 알았다.  

    뜯긴 풀을 보면 풀이 고르게 뜯겨있지 않고 이빨 크기만큼 튀어나온 부분이 있으니 이가 빠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발자국을 보면 3개의 발자국은 선명한데 하나는 질질 끌린 것으로 보아 그 낙타는 한 다리를 못 쓰는 절름발이이다.  

    낙타가 지나간 발자국 옆으로 한쪽엔 단 것을 좋아하는 개미가, 다른 쪽엔 냄새를 좋아하는 파리가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옆구리 양쪽에 꿀단지와 버터 단지를 달고 있었을 것이다.  

    또 낙타가 무릎을 꿇고 앉은 자국 옆에 사람 발자국이 보였는데 옆에 소변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타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고, 소변 자국 옆에 한 손을 짚은 자국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임신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잃어버린 낙타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고, 왕자들의 추측이 과연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베라모 왕은 그들의 지혜로운 모습에 크게 기뻐하며 왕궁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한다.' 


호레이스 월폴은 '왕자들이 항상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것들을 사고와 현명함으로 발견하는 내용'으로 이해해 이를 '세렌디프(Serendip)' '스러움(-ity)' 으로 명명하였다.  (출처 : 나무위키, '세런디피티')


최근에 손으로 모래를 한움큼 쥐었는데 손가락 사이사이로 모래알이 모두 빠져나가듯이 여러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있는데, 그렇게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마다 우연히도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일이 많았다. 나의 최근 경험들 뿐만 아니라 이 설화를 통해서도 느낀 것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 더 많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되돌아 보았을 때, 그 잃어버린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패턴이 조금 비슷햇다. 이런 나의 부주의에 대해서는 좀 더 신경 쓰고 다음에는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번 더 확인을 해보아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멘탈을 놓지 않게 항상 잡아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매우 운이 좋은 일인 것 같다. 


벌써 병원을 나온 지, 4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병원으로 돌아간 타과 전공의 친구들도 많아졌고, 좋아하고 존경하던 윗년차 선배님도, 친한 친구들도, 전임의로는 대부분 병원에 들어간 상태이다. 아랫년차 친구들도 변하는 것 없이 한없이 시간만 흐르자 불안함을 호소했다. 나 또한 이런 시간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통해 얻는 것들이 더 많았고, 그것들을 통해 내가 어떤 것을 얻었을 때 가장 행복해 하는지 알게 된 시간이었기 때문에 근무 중단 초반 보다는 막연히 불안했던 감정들이 오히려 완화되었다.


지금 이 시간이 무료하게 지나간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병원에 돌아가게 된다면 더 다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함께 하게 될텐데 그때도 이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기를, 그리고 최대한 그 시간이 빨리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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