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스트록 -When the sun strokes you
입대할 때 32평 빌라였던 집이 제대할 즈음엔 7평 남짓한 재개발구역의 셋집으로 변해 있었다. 세상은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랑 우리 집은 완전히 밀렸다는 쓸쓸함을 말년휴가 때 좁고 가파른 골목을 오르며 절감했다.
군대에 있을 때도 우리 집의 상황을 대충 짐작했지만 전역을 할 때엔 그곳을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넘쳐흘러 까짓것 뭐.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힘든 시절이었다. 빛은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엄마, 나 , 아버지 이렇게 세명이 누우면 꽉 찼다. 잠을 자면서 공상을 하거나 누워서 음악을 들으며 자는 걸 좋아했던 나인데 그때는 빨리 잠이 들었고 자는 시간은 사실, 그냥 없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아파트, 빌라만 살아서 변소와 연결된 수도시스템이 언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재개발 구역의 우리 집은 집과 변소가 분리되어 있었다. 대문을 열면 오른쪽에 독립된 변소가 있고 조금 올라가면 조그만 방이 나오는 구조였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엔 틈만 나면 물이 안 내려갔다. 작은 거야 뭐 어떻게든 해결하겠는데 큰 건 참 난감했다. 그래서 제발 늦은 밤이나 새벽에 큰 게 안 마렵길 바라고 바랬다. 생리현상이란 게 맘처럼 안되고 참으면 참을수록 조바심 때문인지 도무지 참기 힘든 새벽이 있었다. 그럴 때면 동네 공원 공용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따뜻한 대신 뭔가 이상한 냄새가 응축되어 있는 그런 곳이었는데 가끔 노숙자 아저씨들이 추위를 피해 변기 칸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놀라고 도망치고 싶었을 텐데 그때는 그냥 그들이 나와 그렇게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냥 조금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 시절 썬스트록의 1집 앨범을 들었다. 대단한 명반은 아니었지만 보컬 박세회의 깨끗한 보컬이 쭉쭉 뻗는 기타팝과 잘 어울렸다. 당시 암울한 환경과 반비례해 사랑과 여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복학생이 그렇지 뭐) 시원한 멜로디의 사랑 가사를 들으면, 나도 (사랑)해볼까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썬스트록의 두 멤버 박세회와 정주식이 제대 후 악기를 사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그럼 나도 음악 한번 해보고 싶다. 그들의 앨범을 들을수록 그런 생각이 굳어졌다.
한마디로 말해 썬스트록은 나도 사랑을 해보고 싶다. 나도 밴드를 해보고 싶다. 는 욕망을 솔직히 보여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했다.
오늘 한 기사를 읽는데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박세회? 썬스트록 출신 박세회씨가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걸 읽는데 막 자극이 됐다. 나도 글을 제대로 써봐야지 싶었다. 그리고 썬스트록 듣던 시절을 떠올렸다. 박세회의 밴드 썬스트록을 통해 나도 ~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엔 신춘문예 당선 기사를 통해 '글을 써서 이름을 얻고 싶다.'는 나의 욕망을 알려주는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