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goose와 함께 춤춰요
이십 대를 떠올리면 몽구스의 공연을 보며 몸을 흔들던 내가 떠오른다.
대학에 입학할 때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홍대 앞 라이브클럽에 가는 것이었다. 라디오와 시디로만 접했던 밴드들의 공연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비트볼 레이블 쇼가 처음 본 클럽 공연이었다.
2005년 2월 25일, 쌈지스페이스 바람 2층 공연장으로 올라가는 벽면엔 그동안 했던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입장권과 함께 출연 밴드의 CD를 팔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구석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봤다. 뭔가 이상한데 정이 갔던 눈뜨고 코베인(이때 장기하는 보이지도 않았다.) 유니크한 매력의 피들 밤비를 지나 마지막 밴드가 몽구스였다. 기타 없이 세명이 연주하는데 고등학교 때 처음 seam이나 yo la teong를 들었던 때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다. 공연을 보기 전 음반으로 접한 몽구스는 고개 숙이고 노래하는 골방 청년들 같았는데 라이브는 마냥 짓궂은 소년 같았다.
그때의 무대를 본지 벌써 십 년도 훌쩍 지났지만 마지막 곡 monster가 끝났을 때 밴드의 팬이 됐음을 확신했다. 그 후 서울광장, 광명 음악밸리, EBS 공감 등에서 그들의 공연을 봤다.
광명 밸리는 같이 갈 친구를 구하지 못해 혼자서 하루 종일 공연을 봤는데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고 나왔을 때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몽구스를 보고 록스타는 다르구나... 생각했다. 몽구스에 비해 혼자 외롭게 공연을 보는 내가 조금 비참했었다.
'여기서 가장 신나게 몸을 흔들지만, 가장 즐거운 사람은 끼리끼리 노는 다른 사람들이구나.' 아무리 몸을 흔들어도 그걸 같이 나눌 사람은 없다는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릴 때라서 그랬을까. 이제는 혼자 하는 것이 사실 좀 더 편한데 그때는 혼자인 나를 생각하면 괜히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렇게 쪼그라든 마음을 위로해준 게 몽구스의 댄서블한 비트였다. 그들의 음악은 스타디움보다 방구석에 더 잘 어울렸고 밖에선 고개를 숙여도 방안에선 마이클 잭슨이 될 수 있는 수많은 소년소녀들을 위한 노래였다. 아내의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 몽구스 1집 CD가 있어서 놀랐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라는 확신에, 이 앨범 어땠냐고 물어봤는데 반응이 시원섭섭했다. 직접 사지는 않고 누구에게 받았다고 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내게는 몽구스에 대한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억이었는데. ㅎㅎ
전역 후 내 상황이 안정되고 나서는 몽구스의 음악을 잘 듣지 않았다. 좀 풋내 난다고 할까, 이제 소년 감성은 졸업! 이런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하지만 20대 때에 대한 약간의 연민 때문인지 몽구스의 노래를 들으면 괜히 좀 센티해진다.
영상자료원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나오는데 몽구스의 보컬 몬구가 걸어가는 걸 봤다. 말을 걸어볼까 하다 그냥 집에 갔다.
한때 마포는 대학이란 곳에서 일도 도와주고 수업에도 참가한 적 있는데 그때 몬구를 선생님으로 초청했었다. 혼잣말이란 몬구의 노래에 맞춰 가사를 쓰고 녹음을 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취업 준비할 때 많이 좌절했었다. 나는 왜 이렇게 헛짓을 하고 돌아다닌 걸까. 과거를 부정했었다. 그러나 결국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런 헛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