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A HART - 안아줘
올해 초 결혼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있어 거의 모든 선택을 여자 친구에게 맡겼다. 여자 친구가 정하면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는 게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축가만큼은 내가 맡았다. 친구들의 결혼식을 생각해보면 축가에 대한 내 취향은 확고했다.
1. 축가로 많이 불리는 노래들은 좀 별로다.
- 사랑의 서약이나 신부에게 등이 싫은 건 아니지만 이미 정형화된 예식장 결혼식에서 축가까지 얹고 싶지 않았다.
2. 가수처럼 발라드를 부르는 것도 별로다.
- 호불호를 떠나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매끄럽게 다듬어진 뮤지컬을 싫어하는 내 취향상 프로처럼 부르는 발라드는 사양하고 싶다.
3. 좋아하는 뮤지션을 초청하는 건 좋지만 쉽지 않다.
- 몇몇 밴드가 생각났지만 친분도 없고 하객들에겐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 고비용 저효율이 되면 어떠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내가 부르기로 했다. 친형에게 이런 말을 하니, 너는 관종이니까 잘할 거라고 했다. 나를 30년 넘게 본 사람이니 그 평가가 정확할 거라 믿었다.
문제는 곡 선택인데, 후보가 쟁쟁했다. 산울림 너의 의미, 델리 스파이스 고백, 언니네 이발관의 언젠가 이발관 등등. 코인 노래방에서 혹은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불러봤는데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결혼식이다 보니 잘 불러야 하는 데다 내 인생의 곡을 선택해야 했다.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노래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줄리아 하트가 생각났다. 영화 웨딩싱어에서 따온 밴드명이란 점이 운명 같았다. 또 대학교 시절 가장 많이 들은 밴드가 줄리아 하트였다. 줄리아 하트를 통해 부닌의 소설을 처음 알았고 비치보이스를 듣기 시작한 것도 줄리아 하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줄리아 하트의 러브송 중 고르고 고르다 안아줘를 선택했다. 그전에 많이 불러서 익숙했고 가사가 쉬워 식장에서 가사를 까먹을 것 같지 않았다.
청첩장을 돌리며 축가는 내가 부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노래를 잘하지도 않은데 굳이 왜...' 하는 반응이었다.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오기가 생겼다. 잘 불러야지, 아니 잘 부를 수 있다. 최면을 걸었다.
여자 친구도 조금 불안해했다. 코인 노래방에서 박자를 놓치는 나를 보고 같이 연습하자고 했지만 이상하게 연습하는 게 싫었다. 만약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는 거라면 열심히 정석대로 연습했겠지만 이건 내 결혼식 축가다. 운명처럼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뭔가가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결혼식 당일, 운명 같은 건 없고 아무리 가사가 쉬워도 충분히 까먹을 수 있는 걸 알았다. 초반에 들어가는 것도 반박자 늦고 2절을 부를 때 아내의 상기된 표정을 보고 뭔가 뭉클해져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어차피 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지어서 부르다 겨우 가사가 생각났다. 높이 올라가는 부분에선 노래가 안 올라갔지만 당당하게 불렀다. 그 전 순서까지 사람들의 박수가 자연스러웠는데 축가가 끝나니 뭔가 꾸며내어 치는 박수처럼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뒤돌아보면 결혼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은 축가였다. 스스로 판단해 선택했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떤 시기를 통과하는 순간, 오랫동안 좋아했던 취향을 밝힐 수 있는 고마운 기회였다. 만약 내 맘에 들지 않지만 남들의 시선을 생각해 선택했다면... 분위기는 좋았겠지만 늘 뭔가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나의 미련 vs. 남들의 생각.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