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재미있는 전시에 데려간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종착역은 1호선 시청역,
매일 풀 죽은 얼굴로 출근하는 곳에 주말까지 가야 하나 싶었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시청역 6번 출구에서 플라자 호텔을 지나 지하도도 건너고 여차 저차 해서 도착한 곳은 청국장으로 유명한 사직골 옆 빌딩이었다. '얼마 전까지 계속 공사하던 건물인데...' 주변과 좀 겉돈다 싶은 통유리 카페가 1층에 있었다. 아내는 전시가 이루어지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 어떤 전시인지 말하지 않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평화문방구라는 팻말과 함께 갖가지 문구가 보였다.
평화 스테이플러로 유명한 피스코리아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연 기념 전시회였다. 평화 스테이플러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었다. 지금도 회사 책상에 하나씩 있는 평화 스테이플러와 스테이플러 심을 볼 때엔 반가움이, 과거 제품 사진을 볼 때엔 따뜻함이, 다른 제품군을 볼 때엔 한번 써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이 전시의 특이한 점은 곳곳에 전시된 다른 가구 업체와의 콜라보 가구에 있었다. 가구는 문구처럼 쉽게 살 수 있는 가격대는 아니지만 우리 생활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의 콜라보 가구에 앉아 뭔가를 쓰고 지우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전시도 전시이지만 피스코리아 인스타 계정을 팔로잉 후 전시 포스팅을 인증하면 선물을 준다기에 응모했다. 선물은 예쁜 컬러 지협 or 엄청나게 큰 집게. 끌리는 건 집게였지만 실용성이 제로이기에 컬러 지협을 택했다. 관계자분께서 친절하게 종이봉투에 넣어줘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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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다 보고 근처 스타벅스에 가려고 했는데 1층에서도 전시가 이어진다고 하니 1층 카페에 갔다.
이 건물은 로컬스티치 소공점으로 코워킹 스페이스다. 위워크 같은 곳인데 2층에서 일하면 무척 특이한 전망이 보일 것 같다.
1층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 모두 앉아보고 싶은 곳이었고 munito와 피스코리아가 협업한 가구, 피스코리아와 잭슨카멜레온이 콜라보한 쿠션이 있었다. 전시의 확장이 인상적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협업한 소파나 쿠션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근사한 카페를 가는 건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만족을 얻는 일 중 하나다.
그러나 소위 힙 카페에 가보면 맛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공간 크기에 비해 사람만 엄청 많은 경우가 있다. 거기에 음악까지 시끄러우면 도무지 앉아있을 수가 없다. 안국역 근처 레이어드가 그런 경우였다.
로컬스티치 카페는 사람이 적고 공간이 넓으며 음악도 적당했다. 다만 커피 맛은 평범했다.
비치된 잡지 종류가 다양했다. 뽀빠이도 있고 도쿄 호텔 관련 잡지도 있고.
그중 the new grey seoul를 아내와 재미있게 읽었다. 아내는 내가 맨날 회사에 아재처럼 입고 가니까 복식 규정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단다. 나는 그저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입고 가는 건데. 뉴 그레이 서울에서 멋지게 차려입은 아저씨들을 보니까 나도 예쁘게 입고 출근하고 싶어졌다.
커피를 다 마시고 처가에 갔다. 처가에 가서 전어를 먹었다. 우리 집은 전혀 이런 문화가 없는데 아내의 집은 함께 맛있는 걸 많이 해 먹는다. 처음엔 부러웠는데 지금은 서로 다른 두 집의 문화를 받아들인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