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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달 Oct 10. 2019

우리가 함께 걷던 서울

'여기가 오 수정 찍은 골목이래’


‘정보석이 좋은 것 보여준다는 그 골목길이지'


그때 어둠을 머금은 조금 음침해 보이는 골목길이 생각난다. 우리는 각자의 사진을 찍었다. 무슨 기분에선지 평소엔 거의 찍지 않는 셀카도 찍었다. 겨울의 초입, 가을 코트를 입은 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추위를 달랬고 준비성이 철저한 넌 검은색 겨울 잠바에 장갑을 꼈다. 마치 난 정보석이 된 것 마냥, 나쁜 상상이 현실이 된 듯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네 손은 장갑을 끼고도 내 손보다 더 차가웠다. 장갑을 벗은 맨손을 잡아 내 주머니에 넣어 온도를 나누었다.


잠깐 그곳을 둘러보고 세운상가를 지나 집으로 갔던 건 연애 초기였다. 우리가 함께 본 홍상수 영화가 하나둘 늘어났고 우리가 함께 걷던 서울의 공간도 하나 둘 늘어난 지금,


'너'가 있어서 가능한 서울이었구나. 생각한다.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내게 서울은 사람 많고 시끄러운 무채색의 공간이었다. 물론 걷는 것을 좋아해 무작정 백팩을 둘러메고 아트 선재에서 전시를 보고 삼청동을 걸었던 기억이 나지만 그때를 추억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삼청동을 걸었지만, 굳이 거기가 삼청동이 아니라도 상관없는 그때는 무엇을 걸었다는 것에서 '무엇' 보다 '걸었다'에 온전히 무게가 실렸었다.


하지만 너와 함께 걷던 서울은 달랐다. 초기에는 대부분 네가 아는 서울을 나한테 소개해주는 식이었지.


처음 라면 땡기는 날에 갔던 날, 덕성여중고를 나온 너는 삼청동이 지금처럼 붐비기 이전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지. 그에 반해 난 루시드폴의 삼청동을 들으며, 뭐 이런 무릉도원이 다 있나 하고 생각하던 촌놈이었는데.


그때 우리는 창덕궁부터 걸어서 라면 땡기는 날로 갔었다. 공간 사옥을 지나 현대증권 건물을 보며 죽 걸었던 우린 1번 출구에서 바로 보이는 길, 그나마 나도 아는 길을 지나 라땡으로 갔었다. 내겐 걷기 좋은, 예쁜 길이었지만 네겐 학교 담벼락 너머로 바바리맨을 봤던 곳, 예전에 꼭 가고 싶었던 카페가 있던 곳, 예전엔 친구 집이 있었던 곳이었지. 지금은 없는 분위기를 듣는 건 마치 너의 학교 졸업사진을 보는 것처럼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것을 듣기 전과 후. 나는 좀 달라졌는데 그 공간이 내게도 의미 있는 곳, 상상의 여지가 있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는 라면 땡기는 날에 얽힌 추억, 그 주변 가게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다. ‘먹쉬돈나가 자기 학교 선배 엄마가 하던 집이었다.’ ‘이 근처에 살던 친구들은 모두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갔다.’ ’라면 땡기는 날의 매운 짬뽕 라면에 계란, 치즈, 등이 추가된 건 우리 학교 애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등. 너만 알던 삼청동과 라면 땡기는 날의 역사는 우리의 대화 속에 묻어있었다.


그때의 대화 때문인지, 너와 걸었던 이유 때문인지 내게 삼청동은 그 전과 후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전에는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면 이제는 익숙한 내 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라면 땡기는 날의 짬뽕 라면은 미치도록 매웠고 이후에는 치즈라면만 먹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때 생각이 난다. 너만의 삼청동을 아는 즐거움, 네가 자신 있게 추천한 단골가게에 가는구나 했던 설렘. 그때나 지금이나 난 남들 이야기를 엿듣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 옆에 앉은 커플들의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가게를 나오면서 그 남자 되게 이상하더라 이야기했던 나. 그렇게 엿듣는 건 실례라고 이야기했던 너.


단순히 처음 함께 갔던 공간이라 그렇게 또렷이 기억나는 건 아닌 게 분명하다. 서로 상대도 나와 비슷하다는 신뢰, 그와 함께 커지는 호기심, 나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는 열망이 합쳐져 그때의 대화와 그 공간의 상을 또렷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의 이곳저곳을 함께 걸었다. 동묘앞을 걸으며, 그때가 아마 동대문 역사 공원의 국립의료원 강남 이전 소식이 이슈였던 때였는데. 가는 김에 동묘앞 여기도 같이 강남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달동네를 찍는 사람들이 호기심 같은 것을 비웃는, 이 동네 주민이라는 어떤 강한 결속감 같은 게 있었다.


비슷했지만 서로 다른, 걷는 걸 무작정 좋아했던 안내하고 일깨워주던 네 덕분에 나 또한 서울이란 곳에 한마디 덧붙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막 취업했을 때 같은 부서 여자 과장이 물었다.


‘그래서 인기 씨는 외국 여행은 좀 많이 다녔어?’

‘아니요. 간 곳 없는데요.’

‘학교 다닐 때 공부만 했구나.’


물론 뭐 지금은 휴가 때 잠깐 외국에 나가는 것의 즐거움을 알고 사실 그분도 할 말이 별로 없어서 덧붙인 걸 알기에 별생각이 없지만 그때는 화가 났다.


그때 하고 싶은 말은 이랬다. 


‘여자 친구 덕분에 당신은 절대 느끼지 못할 서울을 걸었고 경험했다. 당신의 빈곤한 상상력으론, 또 게으름으로 평생 가도 알지 못할 그런 서울을 난 알고 있으니 외국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그동안 함께 만나며 서울 외의 공간인 교토, 방콕, 안동 등도 함께 걸었지만, 서울이 특히 더 좋은 이유는 반복의 묘미다. 읽던 책을 몇 년 후 다시 읽을 때 그 유사함과 차이를 즐기듯 몇 년 전 함께 걷던 공간을 다시 걸으며 그때를 추억하는 동시에 조금은 달라진 우리를 본다. 마치 거울처럼.


앞으로도 걸었던 서울을 또 걷고, 가지 않은 서울을 너와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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