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 80 - 뮤직 게더링
공짜 공연이면 열일을 마다하고 갔던 시절이 있다. 요새는 게으름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거의 가지 않지만 그때의 난 정말이지 못 말리는 뮤직 키드였다.
오랜만에 무료 페스티벌을 보고 집에 가는 전철 안이다. 부평 문화재단에서 주관한 뮤직 게더링이란 페스티벌로 전철을 타고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부평까지 오게 된 건 이유는 전적으로 타히티 80 때문이다.
2000년도쯤 MDM이란 잡지의 샘플 CD에 타히티 80 노래가 한곡 실려 있었다. heartbeat라는 노래로 CD를 살 돈은 없고 듣고 싶은 음악은 많았던 욕구를 채워주었다.
백운역에 내려 공연장까지 걸어가는 길, 바람은 쌀쌀한 듯 시원했다. 바람처럼 반전이 있는 뮤직 게더링이었다. 사람이 적은 듯 많았고 노래를 적게 한 듯했는데 생각해보면 꽤 많이 불렀다. 오전에는 디제잉도 하고 Juno 3000(델리 베이스)이 LP도 팔았다고 했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엔 부스가 횅했다. 기대하는 그림과는 조금 달랐지만 가을날 야외 공연은 날씨만으로 매력 있기에 타히티 80의 공연을 고대했다.
피크닉 온 가족들이 많아서인지 아기들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며 주변을 어지럽히는 이들로 짜증이 났지만 전체적으로 가을이란 계절에 어울리는 무드의 공연이었다. 오밀조밀하며 아기자기한 노래를 들으며 청명한 밤하늘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났다.
특별한 관객들을 위한 특별한 곡이라는 소개 뒤에 openbook의 차분한 전주가 나올 때엔 한없이 걷고만 싶었다.
그리고 heartbeat. 이 노래를 들으러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는데 곡을 소개하며 20년 전 첫 앨범에서 한곡 한다고 해서 감회가 새로웠다.
이 노래를 야자시간에 들을 때엔 20년 후 부평에서 라이브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지. 미래는 몰라도 과거는 얼마든지 추억할 수 있으니 마음껏 과거의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본 공연, 재미있었다. 타히티 80은 내일 한번 더 공연을 하고 한국을 떠난다. see you later라 외치던 그들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내일은 아니더라도 몇 년 후 그들의 공연을 또 보며 오늘을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