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구글 g suite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졸업한 지 꽤 됐는데 가능하려나 해서 로그인하고 시험해봤는데 신기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무임승차 기분이 조금 나지만, 뭐 나쁘지 않다. g suite 기능은 꽤 많은데 구글 포토에 원본 사진을 저장하는 것 외에 특별히 요긴하게 사용할 기능은 없어 보인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가 생각난다. 이공계 장학금을 받아서 그것만으로 이 학교에 대한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의 난 본전에 대한 기준이 명확했다. 돈을 지불했으면 그만큼은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 친구들과 대중탕에 갔을 때도 열심히 의욕적으로 때를 밀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장학금 없이, 없는 형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면 기를 쓰고 학교의 모든 프로그램을 이용했을 테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졸업할 즈음엔 학교의 취업 프로그램이며, 이런저런 지원 제도를 이용하며 생각했다. 대관절 난 왜 그동안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사실 난 뭔가를 개척하기보다 낭떠러지가 보이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노력한다.
만약 낭떠러지나 위기가 보이지 않으면? 그냥 하던 대로 안주하며 생활한다.
며칠 전 김연수의 에세이를 샀다. 김연수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그저 쓰는 게 일기라고 했다. 그는 확실히 일기가 뭔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책을 다 읽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김연수는 에세이가 나오면 구입할 몇 안 되는 작가가 될 것이다. (하루키 정도를 빼고 신작이 나오면 구입하는 작가가 있으려나? 가즈오 이시구로?)
몇 년 전 화성문화재단에서 개최한 자전거 행사에 갔을 때 난 사실 김연수의 작품은 거의 한 권도 제대로 읽은 게 없었다. 고등학교 때였나, 잡지 페이퍼에 나온 한 소설 소개를 읽고 도서관에서 빌렸던 기억이 나지만 사실 내용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 오히려 페이퍼에서 2페이지 정도 할애해 인터뷰까지 진행한 냉장고를 썼던 김현영 작가가 더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김연수보다 자전거에 꽂혀서 그 행사에 갔는데, 가보니 참 팬이 많았다. 특히 아주머니 팬분들이 김연수 작가를 둘러싸고 막 이야기를 하는데, 나야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사인받고 싶은 욕망도 없었지만 그 작가의 팬을 보고 도리어 괜히 궁금증이 났었다. 이후 몇 편의 에세이를 읽고 나도 이제 할 말이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