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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날에 달리기 대회

롱기스트 런 인 서울 2019 10km 달리기

by 한박달

롱기스트 런 인 서울은 미세먼지 저감을 목표로 하는 아이오닉 롱기스트 런 캠페인의 끝맺음이다. 2016년부터 매년 했다고 하는데 올해 처음 참가한 입장에서 독특한 대회였다.


우선 참가비가 저렴하다. 아이오닉 롱기스트 런 앱으로 10km를 달리거나(무료) 1만 원 상당의 에코트리를 구매하면 된다. (에코트리는 에너지 복지 기금에 사용된다.) 5만 원 정도의 금액을 내야 하는 다른 대회와 비교해볼 때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다.


두 번째 아이오닉 롱기스트 런 앱 사용에 따른 혜택이 많다. 가령 밤에 달리거나 몇 km 이상 달리면 배지가 부여된다. 롱기스트 인 런 2019에서 배지 획득에 따라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선착순이라 금세 소진되었다.)


세 번째 롱기스트 런 인 서울은 10km 단일 달리기이다. 요새 달리기 대회를 보면 풀코스, 하프, 10km, 5km 등 많은 종목이 있다. 10km 참가자가 상당한 반면 대회의 스포트라이트는 풀코스나 하프에 맞춰진 느낌이다. 이 대회는 죄다 똑같은 거리를 뛴다.


미리 받은 안내책자에는 8시까지 대회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8시 30분에 출발한다고 들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난 보통 늦게 가서 뛰기 전에 여유롭게 보관품을 맡기는 편이다. 짐을 맡긴다고 줄을 선 적은 거의 없다. 이 대회는 20분 넘게 줄을 섰다. 결국 줄 사이를 오가며 자원봉사자 분이 지금 뛰러 가셔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되건 짐은 맡기고 뛰어야 하니 초조한 마음으로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악재가 또 하나 있다면 날씨, 쌀쌀하지만 긴바지를 입기 싫어서 그냥 긴팔에 반바지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그런데 대회에 가보니 다들 반바지에 검은색 타이즈 차림이다. 아, 저 생각을 못했네. 닭살이 돋은 종아리가 불쌍해 보였다.


물품보관 줄. 꽤 길어서 오래 기다렸다.


참가자는 목표 시간에 따라 A, B, C로 나뉜다. 나는 B 조였는데 보관품을 맡기는데 시간을 많이 쓴 탓에 C조에서 출발했다. 여의도공원에서 출발해 국회의사당을 지나 서강대교를 기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이때까지 서울에서 뛴 달리기 대회는 광화문, 하늘공원만 뛰었다. 정작 다리를 통해 한강을 건넌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기대가 컸다.


초반 페이스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어 한걸음, 두 걸음, 발을 옮겼다. 길이 좁아 정체현상도 있었지만 덕분에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었다. 처음 마라톤에 참가할 때엔 지그재그 사람들을 피해 달렸는데 지금은 그런 에너지 낭비를 피한다. 오히려 앞이 막혔을 때 에너지를 잘 비축해 후반 레이스에 대비한다. 순간순간 기분이 아닌 레이스 전체를 생각하면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약간의 오르막을 달린 후 서강대교에 진입했을 때였다. 레이스 중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탁 트인 한강과 푸른 하늘이 당장 달려오라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듯 주변 사람들 모두 조금씩 업되어 있었다. 마치 비트의 정우성처럼 팔을 벌리며 도취된 남자도 봤다.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풍경은 분명히 좋았으나 기다란 서강대교를 계속 달리니 지루해졌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렸으나 비슷한 풍경에 다리만 이어지니 끝에는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게다가 인증샷 찍는 사람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목적이 러닝인지 인증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뛰다가 갑자기 멈춰서 사진 찍으면 열심히 뛰는 뒷사람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유독 이번 대회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 외엔 자원봉사하는 분들의 열정이 보기 좋았고 식수대 배치도 깔끔했다. 무엇보다 아침에 쌀쌀했던 날씨가 풀려서 다행이었다. 8km 이후부터는 다리가 아파서 속도내기가 어려웠는데 주변에서 계속 파이팅 외쳐주니 덩달아 파이팅하며 계속 달렸다. 춘천마라톤이 백 퍼센트 전력을 쏟지 않아 아쉬웠다면 이번 롱기스트 런 인 서울은 마지막까지 쥐어짠 대회였다. 연습은 부족했으나 집중력을 유지하면 달렸다는 점에선 칭찬을 해주고 싶다.



결과는 57분 40초가 나왔다. 목표는 55분이었는데 조금 늦었다. 이번에는 음악도 듣지 않고 NRC 어플도 켜지 않았다. 주변의 파이팅 소리와 바람을 느끼며 냅다 달렸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메달과 간식을 받아 들고 짐까지 찾은 후 아는 형을 만났다. 그 형은 오늘 나보다 늦게 와 레이스 전에는 얼굴을 못 봤다. 혼자 뛰는 걸 좋아하지만 대회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따로 또 같이 운동을 해서 그런지 친근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형과 IFC몰에서 아점과 커피를 해결하고 헤어졌다. 별 것 아닌 10km 달리기였지만 늘 뛰면 몸이 피곤하다. 그 피곤한 상황에서 잠이라도 자면 좋겠지만 난 잠을 자지 않고 NBA 중계를 봤다.


춘천마라톤에 롱기스트 런 인 서울까지. 짧은 기간 동안 2개의 대회에 나갔다. 춘천마라톤 때는 몰랐는데 어제는 정말 몸이 피곤했다. 목욕이라도 가서 피로를 풀까 했지만 집 근처에 괜찮은 목욕탕은 찾으래야 찾을 수 없다. 몇 년 전 갔던 우레시노 온천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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