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정동길에서, 김창기 아저씨

by 한박달

작년 가을, 쌈지 스페이스 회고 전시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와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정동길을 걷는데 익숙한 노랫소리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귀 기울여보니 동물원의 노래였다. 김창기 아저씨가 마이크 앞에서 믿음직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담길 라디오'라고 쓰여 있다. 김창기 아저씨가 일일 DJ가 되어 사연도 들려주고 노래도 불러주는 자리였다. 반가웠다. 빈자리를 찾아 의자에 앉아있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노래를 좋아했지만 장르를 깊게 파거나 한 뮤지션을 엄청나게 좋아한 적은 없었다.


그저 좋은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허전한 마음을 채우거나 시린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곤 했었다. 기쁠 때보다 슬프고 서러울 때 음악을 찾았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들으며 재미없고 우울한 중학생은 자신의 우울이 그리 지질한 것만은 아니라 위로했었다.


대학교 1학년 때쯤 왜 난 여자 친구가 없나 자책하며 남들을 부러워할 때 잊혀지는 것을 많이 들었다. (스위트피 버전으로) 모든 것은 잊혀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부러울 것도 슬플 것도 없었다. 만약 깊은 사랑을 경험했다면 뼈아픈 러브송으로 다가왔겠지만 그때 난 뭘 몰라도 한참 몰랐었다.


전역 후엔 김창기 아저씨 솔로 앨범 하강의 미학을 자주 들었다. 모든 노래가 좋았지만 그중 넌 아름다워는 특별했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도서관과 학생회관을 잇는 잔디밭이 떠오른다. 공강 시간에 혼자 남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걸으며 하강의 미학의 느린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김창기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분의 노래가 내 삶의 BGM이 되었다.


정동길에서 아저씨는 혜화동을 불렀다. 그리고 처음 듣는 낯선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딸에게'


양희은 씨 EP에 들어간 노래로 이미 많이 알려진 곡이었는지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나만 처음 듣나 조금 자존심이 상해 듣고 있자니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는 엄마가 딸에게였다.

눌변이라 집중해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 같았다.

아내와 결혼 후 이 노래를 자주 듣고 불렀다.


멜로디와 가사가 좋았는데 부르는 재미도 있었다.


공부해라~ 하고 선창 하면


아내가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하고 양희은의 목소리를 흉내 내 노래했다.


대학교 때처럼 김창기 아저씨의 새 노래도 2018년 말의 노래가 되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 시간을 떠올리면 엄마가 나에게를 빼놓을 수 없다.)


김창기 아저씨가

계속 음악 활동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처럼 계속 내 삶에 스며드는 좋은 노래를 만들면 참 기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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