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과 아파트와 같은 것들의 청초함에 대하여
친구가 자취하는 오피스텔을 방문했다. 11층 높이였는데, 바깥으로 내려다 보이는 전경이 적막하면서도 도시적인 차가움의 매력이 듬뿍 담긴 형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이런 인상을 가져다 준 데에는, 오피스텔 건물 바로 앞으로 위치해 있었던 건물이 철거되어 시야가 완전히 드러난 까닭도 있었다). '아, 이것이 진정한 서울의 모습이다' 따위의 초라한 감탄을 하며 구로 디지털단지가 보이는 전경을 마음껏 감상을 했다.
시원하다. 그리고 애매모호함이 사라지고 무언가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대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기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공허하지만 또렷하다. 적막하지만 분명하다. 높다란 빌딩들이 구획화되어 있지만 나름의 체계와 흐름을 지닌 채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적인 도시 설계를 통해서 서울의 사람들은 물건의 소비와 문화활동 영위에 있어서 그 특유의 쾌적함과 활동의 자유로움,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육체가 가끔씩은 이러한 편안함과 생활의 쾌적함을 느끼는 것도 특별히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나. 도시의 계획자들이나 각 지방단체들의 역할에 있어서, 얼마만큼 사람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서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다. 도시를 만들어 놓고서 일부러 불편하게 생활하라고 방치하거나 엉뚱한 모양새로 구성한다는 것도 웃긴 일이다.
이 훌륭한 오피스텔 안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곳 주변의 시설이나 도심으로의 접근성, 근무지 출퇴근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가 진행 될수록, 친구가 충분한 조사와 합리적인 판단 가운데 이 오피스텔에 입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는 언제나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다른 가족들을 부양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 속에서 정신적인 피로감을 크게 느꼈던 그였다. 그러나 일단 물리적으로나마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되어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오히려 더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가족들을 도우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까지 챙길 수 있었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이르게 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어떤 벅찬 감정마저 느끼게 되었다. 오피스텔이라 고기 냄새가 잘 빠져나가지 못하는 태생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런 냄새 따위가 친구의 오피스텔로의 입주의 근본적인 의와 가치를 훼손시키지는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렸을 적부터 낡은 빌라나 다세대 주택에서의 생활에서 엄청난 콤플렉스와 혐오감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우리집 앞에는 술집들은 없었으나, 굉장히 큰 대형 가전마트가 있었다. 지하의 위치한 우리집의 쾌쾌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가끔씩 나오는 벌레와 싸우는 것도 매우 고통스러웠는데, 그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싫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소음이었다. 바로 그 가전마트에서 틀어대는 유행가 소리가 너무나 커서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한창 수능을 대비한 공부에 집중해야 할 민감할 때였다. 나는 가전마트에서 터져나오는 노래의 원곡자, 가수들을 마음속 깊이 저주하면서 이런 지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높다란 건물, 혹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독립적인 빌리지와 같은 곳에서 사는 것을 갈망했다. 그렇다. 분명히 내 기억 속에서는 아파트나 지금의 오피스텔과 같은 형태의 주거 공간이 매우 이상적인 서울에서의 주거지였다고 느꼈던 것이다.
문만 나서면 바로 유흥문화를 즐길 수 있는 거리로 진입할 수 있고, 학교 바로 앞에 러브모텔이 있는 현재의 서울의 구조 속에서는, 차라리 이 모든 것들로부터 차단되어 있고 거리를 두고 있는 공간에서 서식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서울의 상점들은 여름만 되면 하나같이 외부 스피커를 통해서 유행가를 틀어놓는다. 술취한 사람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나와 싸우거나 소리를 지른다. 하굣길에 학생들은 중년의 아저씨가 어린 아가씨와 손을 잡고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본다. 이런 망할 놈의 도시 생태계가 형성된 곳이 서울이라면, 차라리 높다란 건물을 도피성처럼 세워놓고 13층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위로 쑥 올라가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고자 하는 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학군이 좋은 비싼 빌리지로 이사해버리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보기 싫은 것들로부터 피해야 한다. 아, 말하고 보니 평소에 내가 비판했던 서울 사람들의 주거지 선택 방식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