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사들의 도시

긍정의 주술사가 판치는 도시

by moment books

'긍정의 주술'에 빠져버린 도시. 바그다드의 알리바바나 중세 연금술사들이 살았던 도시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곳은 우리의 도시 서울이다. 마약이나 최면에 가깝다고 할 말한 '긍정의 주술' 의해 우리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 서울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간단한 '긍정의 주술'의 예를 살펴보자. (안타깝지만)군대에서의 경험이다. 내가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부대의 대대장께서는 매일 상황보고가 시작될 때마다 웃음 체조를 실시했다. 전혀 즐겁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일들의 연속 속에서, 게다가 대대장께서는 수많은 불가능에 가까운 업무들을 그날 그날 지시하면서도 언제나 즐거워야 함을 지시하셨다. 그러한 원칙 속에서 웃음 체조는 매일 같이 그 비참한 막사 안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졌던 것이다. 너무나 일반적인 예라서 별로 특별할 것도 군생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제 도시로 다시 돌아와서, 서울 곳곳에 있는 대형 서점의 '처세술', '자기계발' 코너에 있는 책들을 한번 살펴보자. 최근의 중요한 자기계발서의 트렌드 중 하나는, 자신의 강한 의지와 열망, 그리고 명상의 힘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킬 원동력을 발휘시킬 수 있다는 주제의 책들을 펴내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라든지, 확률의 문제 등의 이론들을 왜곡적으로 해석해서 '사람의 의지가 이 세상에서 안 될 일은 없게끔 만든다'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는 논리까지 든다. 이러한 이론을 사실이라고 떠받들고 있는 미국의 <시크X> 류의 책이라든지, <물은 답을 .... 있다> 등의 일본인들이 주로 쓰는 사이비 과학 서적 등이 인간의 정신의 놀라운 잠재력과 긍정의 힘의 미신성을 지나칠 정도로 과학적인 것처럼 둔갑시켜서 '긍정의 주술'을 대중에게 설파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웃으면 복이 와요'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들을 재생산하는지 모른다. 병마와 싸우고 궁핍함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담하게 다루면서, 그들이 긍정의 힘으로 어떻게 그 시련을 극복하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많은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을 울음바다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게 유도한다. 마치 개개인의 긍정적인 자세가 온갖 사회적인 문제나 부조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원동력인 것처럼 그리면서 말이다.


우리 도시는 반복된 일상과 재미없는 시간의 향연에 그만 너무나 피폐해지고 연약해져서,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계기만 마련해준다면 일부로라도 웃어 줄 자세가 되어 있는 불쌍한 사람들로 가득차 버렸다. 이런 사회에서는 비과학과 미신의 요소들이 쉽게 개입될 수 있다. 특별히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많은 유력자들이 이러한 대중의 심리와 처해 있는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긍정의 주술사'로 활동하는 것에 무척이나 적극적이라는 점에 있다.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사고를 한다손 치면 맹렬하게 사회의 바람직한 분위기를 헤치는 사람으로 지적한다든지, 불손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를 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유력한 교회의 지도자라든지,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공인들의 발언들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갈수록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접근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연합과 목소리가 통용될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건강한 냉소와 비판 행위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주술사의 제의적인 행위의 신비로움 뒷면에는 온갖 비과학적인 원리들과 속임수들이 가득차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굳이 누군가가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현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긍정의 주술사'들이 판치고 있다. 달력은 분명히 21세기도 한참을 지난 것으로 표시가 되어 있건만, 아직도 우리는 전근대 시절의 주술사의 달콤한 말에 현혹되고 그들의 말을 지지하고 싶은 욕망에 무너지는 사례가 넘쳐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건강한 위트와 비판적 행위의 '표면적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삶은 피폐해져 있고 문제의 근본은 보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인위적인 긍정 행위를 통해 행복을 억지로 도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긍정적인 말을 끊임없이 되뇌이고 특정 행위를 반복하고, 생각을 착하게 한다고 해서 자신의 삶과 세계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아, 물론 대부분의 우리 서울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저녁이 없는 삶과 반복된 일상의 수레바퀴 아래서 조금 더 깊게 고찰하고 합의나 비판적 사고라는 어려운 길을 거치는 것조차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어서, 억지로라도 웃어보려고 '긍정의 주술'을 지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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