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실패

- 적기, 타이밍을 놓치는 것의 아픔에 대하여

by moment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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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갖든지, 아니면 남의 삶에만 관심을 갖든지 그 둘 중의 하나만을 한다. 특히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가 그러하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의 어울림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 우리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도 말이다. 균형. 나는 이것이 정말로 매력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침 없도록 유지하는 것이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지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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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을 다녀온 지도 벌써 1년이나 지났을 때였다. 유학을 결정하고 시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그리고 실제 생활하는 가운데서 겪었던 고충들을 여기서 구구절절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충분히 주변에서 들었을 법한 그런 정도의어려움과 애절한 사연들, 정확히 그 정도의 경험을 충실히 한 나는, 얼마 만큼은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자신감과 기대와 함께 2014년 여름에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 도착 후의 생활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경기 불황 탓인지, 아니면 유학 후 내 전공으로 일자리를 찾기에는 적기가 아니어서인지,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일자리를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쉽지 않은 정도로 넘어서 유학에서 받았던 고통을 상쇄할 만큼의 더 큰 심리적인 고통이 찾아왔다. 정확히 내가 생각하는 방향의 정반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번번히 회사 서류 심사에서, 면접에서 낭패를 보는 경험이 거듭될수록 자신감도 점점 잃어갔다.


실패의 경험들은 일종의 내성을 지닌 것이었다. 차츰 현 상태에 적응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서는 적지 않게 놀라게 되는 때가 찾아왔다. 실패의 기간의 초반에는 짜증과 화, 분노가 대부분의 정서를 차지했다면, 감정의 변화는 점점 갈수록 나 자신에 대한 경멸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관심의 정도에 있어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어야 할 나에 대한 관심은 차츰 사그라들고, 소위 잘 나가는 주변 지인들의 상대적 화려함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버린 것이다.


나락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학부 때 친하게 지냈던 선배의 구원의 손길 때문이었다. 거래처를 통해 알고 지냈던 하청 업체 임원을 통해 소개 받았던 나는, 일반적인 채용 절차가 아닌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회사 대표와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면접은 진지하면서도 거북스러운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표는 나에게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대한민국 기업체에서 흔히 나타나는 그러한 몰상식한 질문 - 결혼을 했다는데 아이는 바로 가질 것인가와 같은 질문 - 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물어야 할 질문’과 대답이 오갔던 면접으로 기억한다. 유쾌했다고 까지는 못하겠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면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전에 떨어졌던 10여 차례에 가까운 면접들과 마찬가지의 결과들이다. 많은 서울에서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것처럼, 바로 그러한 성격의 어려움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아픔 속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이 무시무시하고 냉혹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고자 남아있는 것도 무척이나 재미난 측면이다. 애증의 도시. 개인적인 무력감과 무능함에 대한 자책. 서울은 많은 복잡한 심경의 청년들이 오늘도 하나씩 자신만의 놀라운 비극들을 써내려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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