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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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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books Apr 12. 2019

두려움의 순간

0. 상기

1. 입구에 도착하다

저녁에 성산일출봉 입구에 도착했다. 제주도에 너무 늦게 도착한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숙소 체크인을 하고 성산일출봉에 오르는 시간 자체가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3월, 오후 6시가 넘은 시간부터 오르기 시작하니, 이미 정상에 올랐을 때는 주변이 너무 어두워졌다. 성산일출봉 입구쪽에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도 익숙한 관광지 입구의 모습이던가. 

그러나, 일출봉 전경은 전혀 평범한 모습이 아니었다. 구름도 많이 끼고 해도 해도 지기 시작한 시간대에 바라본 성산일출봉의 풍경은, 조금 과장해서 영험했다.  


2. 바람

제주도에서 많은 것 세 가지 중 하나인 바람. 충분히 무서운 바람을 맞이했다. 오르는 길의 경사가 높았던 이유도 있지만, 일단 바람 자체가 워낙 강하고 차가웠다. 난간을 붙잡지 않으면 몸이 흔들리는 것 같은 강렬한 바람이 끊이지 않고 몰아쳤다. 조용히 마음속으로 내일 일정인 우도 여행은 취소를 결정했다. 파도라도 조금 높아지면 배가 취소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는 얘기를 들어서이다. 

이번 여행은 특별하다. 아내는 자기 친구와 다른 일정을 따로 갖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인 여행이었다. 그런 귀중한 여행이기에 나는 절묘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다. 변수를 최소화해야 했다. 우도는 취소다.  


3. 돌바위

나는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심정이 되었다. 두려움의 감정이 엄습하고 주변에서 어떤 위협이 가해질지를 근심하며 어려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며 나아가는 상황에 처했다. 일단 끝까지는 가보려고 결심했다. 사실 성산일출봉 정상 자체가 오르는 데 빠르면 30분도 걸리지 않는 코스이기도 하고, 나 말고도 몇몇 사람이 내 뒤를 따라 올라오는 것을 봤기에 중도에 포기하기도 조금 우스웠다. 그런데도 나는 충분히 무서웠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나의 그런 심정을 비웃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당시 감정을 거짓되게 표현할 생각은 없다. 나는 충분히 두려웠던 것이다. 

여러 돌바위를 지나쳤다. 어떤 돌바위의 그늘진 공간에서 무언가 있어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4. 두려움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가장 지배적인 생각은 두려움이다. 오르는 길에서 뒤따라 오거나 하산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 올라가는 길에, 몸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인간은 신변상 위협을 느낄 때 평소에는 찾지 않았던 신에게 기도를 드리곤 하는데, 이를 테면 비행기에서 골치아픈 난기류를 만났을 때에나, 불가피하게 지나치게 과속운전을 하는 운전자의 차 조수석에 올라 앉았을 때,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으로 멈추는 경우 같은 때이다.  

오늘이 그런 날 중 하나이다. 나는 분명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빨리 정상에 올랐다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쉬지 않고 정상으로 향했다. 사실상 짧은 산행길이라서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도 아닐 수 있다. 평소의, 한낮의 날씨 좋은 날에 산을 올랐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날은 분명히 다른 분위기와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성산일출봉 정상에 도착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몇몇의 사람이 보인다는 사실에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아 있다. 구름이 짙게 깔린 까닭이다. 강한 바람과 시커먼 구름, 그것이 내가 처음 마주한 성산일출봉 정상의 모습이었다. 


5. 두려움의 기억들

두려움을 느낀 순간들에 대한 기록, 혹은 그 두려움의 감정에 대한 이유와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체득하곤 한다. 얼마간 나는 두려움의 순간에 대한 내용을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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