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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books Nov 04. 2018

숲길 3.

다른 곳으로 이끄는 빛.

투과하는 빛


중세시대 교회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고딕양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육중하고 무게감 있는 벽체와 기둥을 사용한 양식에서 벗어나서, 대략 13세기부터 프랑스와 독일 지역 중심으로 발달한 건축 양식이다. 이 양식은 교차로 된 리브궁륭을 사용하고 그 중량을 지탱해줄 수 있는 버트레스(벽을 지지해 주는 구조물)를 내외부로 설치함으로써 발전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은 벽체를 다른 장식으로 활용하는 자유이다. 리브궁륭과 버트레스를 통해 굳이 힘을 받지 않아도 된 벽체는 세 가지 구조로 발전하게 되는데, 즉 측랑(본당과 평행을 이루는 양쪽 길고 좁은 복도)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아케이드와 트리포리움(사제나 교회 내부인들이 돌아다녔던 순회통로가 있는 벽체 부분), 그리고 클리어스토리다. 이중에 창문을 설치하는 클리어스토리 부분을 굉장히 높은 공간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 중세인들은 이곳에 멋진 창문을 설치했다. 스테인드글라스이다.


중세인들은 바로 이 높다란 클리어스토리에 설치한 스테인들글라스로 투과되어 들어오는 햇빛의 색채효과를 통해 천상의 분위기의 공간감과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인공적인 건축물 효과를 통해 얼마나 초자연적인 관념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유럽의 여러 고딕 성당을 다녀본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죄송하다. 나 또한 유럽에 가 보지 못했다. 그러나 비슷한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시카고대학교의 록펠러 채플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분위기를 느껴보았다). 사람의 감정이란 이러한 물질의 소재와 질감,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효과와 분위기의 절묘한 조화에 의해서도 천상의 세계가 눈앞에 시현된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떤 연출을 의도하는 인간의 손에서 이렇게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놀라운 형상이 창조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나 내가 그 연출가의 손에서 빛어내는 효과들 중,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빛과 건축/물체 소재와의 콜라보 효과를 이끌어낸 작품들을 마주할 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싱크된 공간 내부를 들어오는 자연광 효과에서부터, 비엔날레와 같은 현대작가들의 설치미술들,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소개한 책자를 볼 때에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의 미묘한 감정선을 움직이면서 특별한 기억과 냄새, 순간들을 회상하고 머릿속으로 어떤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일에 빛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안타깝게도 이 빛의 효과에 대한 사설은 다른 글에서 이어가야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원' 올림픽공원의 늦은 오후의 부서지는 듯한 황금색 빛깔의 찬란한 햇살에서 받은 감명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 너무 먼 곳에서부터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서도, 내가 마치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공간에 서 있는 느낌을 설명하는 것은 앞에서의 글로 어느정도 간접적인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공원의 나무들은 이미 완벽하게 각자의 종이 지닌 엽록소의 식물학적인 원리에 따라 특정 색깔의 옷으로 완벽하게 갈아입은 상태로서, 일년의 주기 중 (인간의 관점에서)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푸른잎이었 때는 (가시적인 효과 측면에서)중립적이고 무채색적인 상태였던 투명한 유리였다면, 이제는 '자연의 순리'라는 예술가가 고안한 화학작용에 의해 갖가지 색채로 채색된 스테인드글라스로 바뀌어 공원과 숲길을 감각적이고 감정의 폭풍을 불러일으킬 풍성한 공간과 분위기로 연출될 차례인 것이다. 나는, 분명히 이런 순간의 공원, 혹은 숲길에서는 기존에 위치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벤치와 오솔길과 나지막한 능선들은 일종의 고딕 교회의 교차궁륭이나 아케이드, 버트레스인 셈이다. 모든 것이 하나의 시공간을 연출해주는 배역들이자, 일관되게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주면서 가장 행복한 세계의 한 단면을 경험하게 만든다.       


하나의 그림이 떠올라 그것을 언급하며 마무리 짓고자 한다.

고흐가 화가 생애 초기에 그린 숲속의 모습이다.

어떤 여인 한 명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교회 앞길을 걸어가고 있다. 작품 감상자가 바라봤을 때 왼쪽에서 일몰에 가까운 햇빛이 나무들 사이로 투과되어 비춰지고 있다. 작품에서 연출된 가로수의 구도와 빛의 효과, 그리고 교회라는 직접적인 상징물, 이 모든 것에 대비하여 매우 작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의 모습에서, 고딕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의 효과가 그려졌다.

고딕 양식의 종교적인 효과와 영성적인 체험의 한 형태를 여기서 강조하고자 함은 아니다. 나는 바로 어떤 순간에서의 장소, 내가 세계 속에 실존하면서도 동시에 어떠한 다른 차원으로의 '넘어감'과 잠시간의 물리적인 '멈춤'의 간접 체험에 대한 관심으로 이 광경을 설명하고자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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