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k 2. 강의실
강의실만 두고 생각해보자. 한 학생은 심사숙고 끝에 자신이 대학 재학 중 가장 초점을 맞출 부분이 학과 생활 자체에 충실히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에 웬만한 일이 아니면 강의에 빠지지 않고 성실히 공부에 임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여겼다. 그 학생은 강의실에서 가장 집중도가 높은 앞자리 중 하나를 선택하여 매 강의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강의에 참여했다. 꼼꼼한 노트 필기, 성실한 과제 제출은 물론이고 조교에게 문의사항이나 점검해야 할 사항들을 틈틈이 이메일로 물어보면서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강의실에서 이 학생은 앞으로 학과 생활에 대한 설렘과 막막함 사이에서 하나의 확실한 결정을 내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경주마처럼 뛰어갈 것이다. 이 학생은 ‘학점’이라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물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자로서의 선택으로 설렘과 막막함의 딜레마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무조건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학 교육이라는, 자신이 선택하여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과정을 선택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표면적인 활동은 이전의 학창 시절처럼 단지 ‘점수’를 잘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서는 대학이라는 목표 때문에 점수를 잘 받고자 했다면, 지금은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인지 간혹 회의감에 빠질 수 있다. 학창 시절간 그 학생은 다음 진급할 학교의 수준을 더욱 높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이제 이곳에서 점수를 잘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더 좋은 회사, 더 좋은 직장.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유리한 자리 선점이라는 또 다른 목표가 상정되었다. 이것을 깨달으면서 다시 그 학생은 강의실이 능동성과 자율성이 있는 곳이라는 성격 정의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되고, 다시금 권태로운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대학교 교육이 특별한 환경과 선택의 기회 속에서 얻어낸 능동적인 활동이 있는 곳으로 이해했을 때, 이 학생은 그 목적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강의실을 분명 설렘이 넘치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이 학생은 다시 반복되는 학과 생활의 매너리즘과 학과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뻔한 활동이 예정된 공간으로 적응하면서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바로 막막함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지난 학창 시절과 똑같은 생활 패턴과 공부 습관대로 대학 생활을 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준비한 것이 결국 어떤 대기업, 어떤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4년이었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이라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누가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사회에 던져져 혼자서 헤쳐나가야 한다.
대학 생활은 어느새 막막한 사회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준비하고 훈련하는 공간이 돼 버렸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평범한 일꾼, 성실한 사회인으로 인정받기 위한 훈련의 공간인 셈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식의 공간에 익숙했다. 정해져 있는 대로 따라서 하면 되는 공간. 단지 그 일이 막 교실을 벗어나, 자율과 능동적인 공부의 대표 공간처럼 생각한 강의실에서 똑같이 마주한다는 점에서 당혹감을 느낀 것뿐이다.
오히려 약간이라도 더 자유의 여지가 생겨나면서 더 막막해졌다. 정해져 있는 길은 명확한 것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가치 설정과 방향성 안내라는 길잡이적 역할을 교수가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 당국은 미래가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선언만으로 잠시나마 학생들이 설렘을 느끼도록 기만했을 뿐이다. 그 이후로는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모두가 원하는 대기업과 좋은 일자리에 대한 목표를 공공연히 담론화시키지는 않았을 뿐이지, 그 방향대로 나아가기 위해 각자 알아서 준비하고 따라와야 한다.
강의실은 불행히도,
아무도 삶의 방향성 설정의 필요성과 선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상태에서, 조만간 사회로 던져져야 한다는 막막한 현실을 마주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제 강의실은 다시금 권태로운 공간이 되었다. 설렘과 막막함은 한 번씩 큰 존재감과 함께 각각의 학생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정해진 그 무언가를 해나가는 공간에 놓여졌다. 무언가 계속 시키고 있고, 던지는 대로 학생은 받아들인다. 그러고선 다시금 회의적인 생각에 빠져든다. 다음은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으로 말이다. 그나마, 그 대학 시절이 그래도 진정한 권태로움을 맛보기 이전이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