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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books Jan 24. 2021

안과에서의 흔한 일

0. 진료 전 


작년 안과를 방문했던 일이다.


언제나 떨린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행여나 망막박리나 이에 준한 다른 더욱 안 좋은 결과를 들을까 봐 겁났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또 이전 방문처럼 망막변성으로 인한 레이저 시술을 하자는 얘기를 들을까 덜컥 겁이 났다. 


선생님도 바뀌었다. 

지난 2년 사이, 나에게 레이저 시술을 해준 선생님에서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벌써 몇 명의 의사들이 내 눈 진료를 봤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6명 이상은 보았다.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들을 관찰했다.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 많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현상으로, 단순한 근시나 노안의 이유로 찾은 분들도 많은 것 같고, 

녹내장 같은 심각한 질병에 대한 염려로 찾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예약을 하지 않고 방문하고선, 왜 이렇게 자신은 진료보는 시간이 늦어지냐고 화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사실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것이다. 

코로나로 서로 조심스런 이런 때에, 마스크까지 벗고서는 침을 튀겨가며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병원에 오면 종종 저런 사람들을 만난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억울한 사람들. 



1. 동공 확대   

 

눈에 산동제를 넣고 기다리면서 변화를 기다린다. 


뚜렷히 보이든 사물들이 점점 겹쳐보이거나 상이 흔들려보인다. 

그러다 어느새 비문증 자체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흐려진다. 몽롱해진 상태처럼 돼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상태가 가장 행복하다. 

잠시라도 비문증이 많이 해소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2. 레이저 시술   

 

처음에 선생님이 망막변성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심장이 떨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선생님이 얄궂게도, 두괄식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던 탓이다. 


망막변성이 있었고, 그리고 시술을 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했다. 


이전 시술을 한 것이 잘 되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별다른 문제는 현재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별다른 추가적인 시술이 없었다. 




3. 흔한 대화  


항상 내가 듣는 진단의 내용은 비슷하다. 


비문증은 그 자체가 병리학적인 현상은 아니다. 

비문증은 어떤 안과 질환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신경을 쓰면 쓸수록 더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더 없어지지는 않고 노화에 따라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내가 직면한 실존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간절한 의지와 함께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의사 선생님의 간단한 답변이다. 


: 그래도 나이가 더 들면 조금 줄어들거나 그러지 않을까요? 


의사: 나이가 들수록 부유물이 더 많아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조금이라도 희망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며)부유물이 시간이 지나면 안구 내에서 조금 가라앉거나 할 경우는요? 


의사: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여기 시술한 곳이 보시면 이러이러한데....

(의식적으로 재빨리 다른 '병리학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한다)


보통 이렇게 대화를 마치게 된다. 

나는 그럼 완전히 저주 받은 시지프, 즉 영원토록 산꼭대기까지 올려놓은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고선 다시 내려가서 들고 올라와야 하는 저주를 받은 시지프와 같은 마음이 되어, 진료실 밖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곤 하는 것이다.  



4. 집으로 가는 길

 

옆에서 아내가 부축해주며 집으로 향한다. 

다소 즐거운 마음으로 뿌연 시야를 즐긴다. 

어쨌거나 의사들의 표현마냥 "병리학적으로는 이상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비문증이 또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일단 집에 즐거이 돌아간다. 


일단 눈에서 망막이 떨어져 나갔거나 

시야를 잃게 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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