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흔들리는 시절
우리 모두는 삶의 첫 풍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생리학적 기대치에 맞추어 구입한 삼촌 옷과 같은 교복을 입고 우리들은 처음 중학교 교문에 들어섰다.
중학생 때에는 입학 당시 자신의 신체보다 큰 교복을 사입어야 하는 것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불행을 마주해야 한다.
하나는, 이 시기부터 우리는 소위 '날라리' 혹은 '양아치'라는 유형의 존재들과 같이 생활하게 된다. 이들은 단순히 공부를 안 한다거나 혹은 담배를 피고 난 이후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의 문제를 떠나, 일단 기본적으로 특정 '못났다'라는 유형에 포함되는 학우들을 집요할 정도로 괴롭히는 데 가장 많은 노력과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어떤 아이들은 실제로 죽음과 같은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 졸업하기 전까지 쇠사슬에 묶인 장고와 같은 삶을 살기도 한다. 몇몇은 물리적인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이들 십대 식민주의자들의 지배와 폭정에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든가 아니면 방관자가 되어 지냈다.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만약에 이들 어린 폭정자들에게 성인처럼 공소권이 적용된다면, 검찰들은 지금보다 보다 많은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하며 거의 기계적이고 관료제적인 행위로서의 기소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학교야말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사전에 잠재적인 범죄자들을 색출해내어 사회를 보다 훌륭한 치안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사전 검열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길어진 수업 시간이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당시에 7교시까지 수업이 존재했다. 초등학생 때 어린이들은 수업 시간 이후에 학교 운동장이나 근처 놀이터에서 시간을 주로 보냈다. 몇몇 당시 앞서가는 교육열을 보인 가정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이때부터 학원이라는 곳을 다녔지만, 내가 어렸을 당시에는 학원보다는 야외에서 놀면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중학교의 훨씬 길어진 수업 시간과 각종 과제, 그리고 방과 후 활동으로 또 다시 수업이나 학원이라는 공부 관련 일과가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학원을 다닌 경험이 없던 나조차도 중학교의 학과 생활은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밖에 여러 생리학적인 불편한 경험들이 잇따른다. 굵어지는 목소리, 짙어지는 수염, 점점 작아지는 교복, 그리고 끊임없이 거울에 비친 모습에 신경써야 하는 지독한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적인 고통까지 더해진다. 그러나 왠지 우리 몸은 훨씬 더 나약해지고, 알게모르게 책가방과 책상 속으로 몸이 깊숙히 수그러들어간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 스파르타에서는 아마 이 시절 철학적 소양과 함께 육체적 미를 맘껏 향유할 수 있는 인체공학적인 활동과 함께 강도 높은 체력 단련의 현장에서 건강한 땀을 흘리며 타는 듯한 햇빛을 바라보며 균형 잡힌 성인이 되어가는 즐거움을 만끽했을 것이다. 반면 한국의 중학생들은 체육 시간에는 배구공이나 축구공을 옆에 두고 잡담을 하고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자는 훈련을 본격적으로 터득하기 시작한다. 수업 이후에는 차를 타고 학원으로 향하든지, 아니면 PC방에 가서 또 다시 눈과 목과 허리만 혹사시키는 가장 한국적인 운동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첫 풍랑의 시기에 이 모든 것들을 묵도하면서 하나의 더욱 커다란 실존적인 문제 하나에 직면했다. 비문증은 안 그래도 가장 예민하고 날카로운 신경을 지닌 시절의 나에게, 보다 큰 편집증적인 증세를 더하는 데 일조했다. 어느날, 여느 불행한 체육 시간에 농구를 하면서 나는 운동장 반대편에 펼쳐진 모래 바닥과 하늘을 쳐다본다. 번쩍거리는 물체들, 그리고 시야에 따라 움직이는 실타래들이 시야에 충분히 많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교과서를 펴서 보는데, 시야 속 날파리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계속 쫒느라 책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다. 중2 때 그 비극적인 안과에서의 경험을 한다. 중3, 고1, 고2... 나는 점점 편집증적인 증세가 심해진다.
가장 불편한 점은 푸른 하늘이나 흰 벽, 혹은 운동장의 허연 바닥을 쳐다봤을 때의 그 징그러운 형체들의 시야 속 난립과 이에 따른 어느 한 사물에 대한 시야 집중의 어려움이었다. 이것은 점점 심해져서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나는 아직도 온전히 파란 하늘을 바라본 기억이 없다. 거의 정신병처럼 내 눈 속 부유물을 쫒는 데 온 정신이 팔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이 부유물을 무시하고 직관적으로 사물 자체를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을 청소년 시기의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러한 뼈아픈 인식이 나를 어린 시절부터 훨씬 조숙한 존재로 만들어갔던 것 같다. 아직 까뮈를 알지는 못했지만, 이미 나는 얼마간 그와 같은 식의 실존주의자로서의 배양을 스스로 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물을 바라보는 것의 어려움보다 더욱 큰 어려움을 나는 경험하게 되었다. 책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고등학생 이후로 나는 하루에 책을 서너 시간 정도로만 제대로된 독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오래 책상에 앉아 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열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는다면, 그중 절반 이상은 내 시야 속 부유물의 움직임에 뇌가 완전히 익숙해지고 독서 등의 활동에서 완전히 신경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도록 적응하는 시간으로 할애해야 했던 것이다. 과연 나는 청소년 시지프이자, 아마추어 햄릿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고자 애쓰는 특이하게 조숙한 청소년이 되어갔다.
청소년기에 일반적으로 겪는 많은 난제들과 함께, 나는 비문증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심리적인 문제에 영향을 받게 되었고 '나만의 고충' 문제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나는 한 때 분명히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자아에 몰두하고 불행, 연민, 분노, 좌절, 불가항력, 면목 없음 등의 정서에 깊이 파고들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시절에 경험한 감정의 기억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몸에 새긴 채 살아간다. 그것은 보다 성장했을 시기에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 혹은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아픈 손가락이 되기도 한다. 시지프가 그러하듯이, 사람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직면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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