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은 봄을 닮았더라
봄밤이 왔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하얀 밤이지만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그런 밤.
해가 거듭될수록 옅어지는 기억은
빛바랜 사진처럼 애틋해지니
이 시절엔 나무와 가로등이 없는 길을 찾아 걷는다.
목련처럼 진하게 적시고는
벚꽃처럼 금방게 지고 마는
봄은 참 쉬운 계절.
편지를 쓰자.
이 밤엔 하얀 종이에 쓰려던 말들을 적어보자.
구구절절 토해낸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기 전에
꽃잎에 덮이고 말 테니 잉크를 과하게 묻힌다.
밤이 지나 아침쯤엔
바람이나 빗자루나 마음 따위에 쓸려
한 잎이라도 가닿을지
봄밤을 함께 걸으면
사랑한다는 말이면
그것으로 온전한 만개를 생각했던 시절,
그 밤과 그 말이 참 연약하다는 걸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또 봄밤이 왔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당신의 기억처럼
이번에도 혼자만 하얀 모습으로 결국 오고야 말았다.
거리엔 밤 편지의 글자들이
봄처럼 흐드러져 있다.
[사진 : 춘천, 대한민국 / 샌프란시스코,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