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재회
[지난 줄거리]
아르델 왕국으로 호송된 백설과 윌리엄은 그대로 감옥에 갇혔다. 칠흑같이 어두운 감옥에서 두 사람은 자작나무 숲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라오스는 파울에게 이븐 왕국의 왕비가 암살 위험에 처해있다는 서신을 받는다. 라오스는 지금껏 숨겨왔던 출생의 비밀을 써먹기로 결심하고 아론에게 윌리엄 대신 감옥에 갇히고 그를 빼내겠다는 말을 꺼낸다.
18화 : 재회
"왕비님, 라오스 왕자님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혼자서도 잘 걷고 제법 말도 잘합니다. 겁이 좀 많지만… 제가 힘이 닿는 대로 라오스 왕자님을 잘 보필할 테니 부디 건강하시옵소서. 왕비님이 오래 사셔야 라오스 왕자님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론, 자네에게는 늘 고맙고 미안할 뿐이라네. 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이번 편지가 마지막이 될지 몰라 염치 불구하고 몇 가지 부탁을 하려 하네.
우선 라오스가 열다 섯이 될 때까지 출생의 비밀을 함구해주게나. 어릴 때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을 주고 싶지 않아. 그리고 라오스가 언제 성에 들어와 왕좌에 앉게 된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도록 교육에 힘써주시게. 이 부분은 내편에서 몰래 사람을 붙여두겠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는 누구시오?”
감옥에 갇혀 지낸 지 벌써 일주일.
윌리엄에게 생전 처음 본 낯선 사내가 눈앞에 나타났다.
자신의 옷고름의 단추를 풀어 에메랄드 빛 목걸이를 꺼내 윌리엄 앞에 내민 사내는 다름 아닌 라오스였다.
“혹시 이 목걸이를 아십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윌리엄 목에 걸어주었던 목걸이. 필립이 자기는 왜 안 주냐며 한 바탕 난리가 났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께 받은 목걸이.. 어찌 나와 똑같은 게 있지?”
“18년 만입니다. 왕자님의 쌍둥이 동생 라오스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고.. 내 목걸이는.. 대체…”
윌리엄은 묶여있는 손으로 목덜미를 더듬었다. 항상 지니고 있던 목걸이가 사라졌다. 옷 구석구석을 만져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감옥에 갇히는 중에 빼앗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보여주지 않으셔도 왕자님이 제 형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게 동생은 필립뿐이오. 대체.. 무슨 속셈인 게요?”
“저 또한 3년 전에 똑같은 반응을 했습니다. 지금 이곳은 감옥이고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니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으십시오.”
라오스는 윌리엄에게 지금까지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윌리엄 왕자는 정략결혼을 발판 삼아 정복 의욕을 드러내는 아르델 왕국의 속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자였기에 라오스가 전달하는 것을 빠르게 이해했다.
“이븐 왕국의 왕비가 암살 위험에 처해있다는 말인가?”
“아르델 왕국에서 이븐 왕국에 첩자를 심어둔 것 같은데 … 왕비님을 제거할 조짐이 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백설 공주는.. 무사한가?”
“네. 아르델 왕국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곳에 숨어계십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왕자님 대신 제가 이 감옥에 있겠습니다. 왕자님께서 이븐 왕국 성에 가서 왕비님을 구출해 주십시오. 왕자님밖에 하실 분이 없습니다.”
윌리엄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아르델 왕국의 극비사항이었다. 이제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왕자가 그 나라의 대역 죄인으로 취급받고 있는 사실이 주변 나라에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라오스는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해서 윌리엄을 이용해 왕비를 외부로 빼내 올 생각을 했다. 윌리엄 왕자라면 이븐 왕국에 의심을 살 일도 없었다.
“이제 곧 간수가 자리 이동을 할 시간입니다. 그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라오스는 윌리엄의 옷으로 갈아입고 윌리엄은 라오스가 미리 준비해 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라오스의 두 손을 밧줄로 묶어 주며 윌리엄이 멋쩍게 말문을 열었다.
“라..오스라고 했나? 반드시 왕비님을 구출해서 돌아올 테니 염려 말아라.”
성의 비상통로로 빠져나간 곳에는 아론이 미리 준비해 둔 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레아와 미뉴에트 그리고 파울이 서 있었다.
“왕자님, 지금부터는 저희가 이븐 왕국까지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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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왕국에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백설 공주의 결혼식을 두고 입씨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왕비님, 공주님이 사흘 안으로 돌아온다는 게 확실한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대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백설 공주 결혼식을 어떻게 할지 논의합시다.”
신하들이 왕비를 앞에 두고서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왕비가 갑자기 왜 저러는 것 같소?”
“왕비의 의중을 헤아리는 건 이제 그만둡니다. 어차피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문득 왕비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오. 지 자식도 아닌 백설 공주를 저렇게 감싸도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소?”
“여튼 우리는 왕비 해치우고, 백설 공주를 결혼시키기만 하면 되오. 이 나라가 아르델 왕국이 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소.”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왕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공주의 결혼식은 이븐 왕국에서 했으면 합니다.”
“아르델 왕국 성에서 식을 올리기로 한 것은 훨씬 전에 정해진 일이 아니옵니까?”
“그렇다면 아르델 왕국에 의향을 다시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이븐 왕국 성은 공주에게는 결혼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곳이 아닙니까? 결혼식만큼은 가장 행복하게 치러 주고 싶습니다.”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던 신하들이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차마 내뱉지 못하고 서신을 넣어 보겠다는 말로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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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하루를 내달렸는데 괜찮으신지요?”
“괜찮소. 그대들은 어떻소? 심지어 여인이 둘이나 있는데 어찌 그렇게 말을 잘 타시오.”
미뉴에트와 레아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파울은 두 아이의 표정을 살피고 다시 입을 열었다.
“왕자님, 내일 오전 중에 이븐 왕국에 도착합니다. 왕자님을 보면 아마 이븐 왕국의 대신들은 물론 왕비님도 놀라실 겁니다. 일각을 다투는 상황이라 차마 왕비님께도 말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신하들 중에 내가 이리 돌아다는 걸 수상쩍게 보는 이들도 있지 않겠나?”
“그래서 짧은 순간에 해치워야 합니다. 왕자님은 성 입구에서 서신을 왕비님께 직접 전달하러 왔다는 말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왕비님을 알현할 수 있는 접견실로 안내받을 것입니다.
접견실에는 문이 세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왕자님이 들어가는 문 또 하나는 왕비님이 들어오시는 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성 밖의 통로와 연결된 비밀문입니다.
접견실 가장 왼편 끝에 성모상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밀면 비상계단으로 통해 있고 쭉 내려오면 성의 후문으로 연결됩니다. 왕비님을 보시고 세 번째 문으로 빠져나오시면 저희는 그곳에서 마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만에 하나 일을 그르치면.. 어찌해야 하는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혹여 문제가 생길 경우라면… 왕비님보다 왕자님이 우선입니다. 왕자님이 여기서 잡히시면... 양국 간의 전쟁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그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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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는 정원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백설 공주를 데려오겠다고 신하들과 약속한 기일이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가진 무기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공주를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키워주고 싶었지만 공주와 지내면서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
왕비는 이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정략으로 얽매인 그런 권력 놀음의 희생 제물이 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물론 공주는 정략결혼을 해야만 한다면 굳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선택하고도 남을 아이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명하고 명확하게 보이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정략결혼을 붙들고 처절하게 싸우고 또 싸우며 거부한 것은 백설이 아니라 왕비 자신이었다.
‘난 대체 ..왜..?’
입이 바짝 타 갈증을 느낀 왕비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왕비님, 아르델 왕국의 윌리엄 왕자가 정략결혼에 필요한 서신을 왕비님께 직접 전달하러 왔다고 합니다. 접견실에 윌리엄 왕자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윌리..엄이?”
왕비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접견실로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윌리엄의 흔적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나는 마리아가 참 좋아! 마리아도 나 좋아해?"
"있잖아.. 누굴..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리고 숨을 못 쉬겠어. 이건 무슨 병이야?"
"마리아도 혹시 나와 같은 마음이야?"
“접견실 안으로 아무도 들이지 말거라.”
"글쎄요.. 마리아는 왕자님을 좋아할까요? 말까요? 꽃잎 뜯어보면서 물어볼까요?"
"왕자님! 그건 병이 아니라 ‘사랑’을 앓는 거예요. 사랑을 알면 어른이라든데... 어른이 된 기념 파티라도 할까요?"
"왕자님…이러시면 안 돼요…"
윌리엄은 접견실의 구조를 파악하여 어떻게 빠져나가면 좋을지 생각하며 몸이 바짝 굳어있었다.
그때,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세게 닫혔다.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린 그의 눈앞에는 지난 3년 동안 그토록 간절히 그리워한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