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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Apr 14.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19

19화 : 같은 마음

[지난 줄거리]

윌리엄에게 라오스가 찾아왔다. 죽은 어머니께 받은 목걸이와 똑같은 걸 라오스가 갖고 있었다. 라오스가 윌리엄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라오스는 윌리엄을 감옥에서 빼내고 자신을 감옥에 가둔다. 대신 윌리엄이 이븐 왕국에 가서 암살 위험에 처한 왕비를 데려오기로 했다.

파울 일행과 함께 이븐 왕국에 도착한 윌리엄은 그곳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19화 :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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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해야 할 일은 두 왕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분들이 밝은 성정으로 자라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왕비님이 승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늘이 있으니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해라."


마리아가 아르델 왕국의 성으로 들어온 건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결혼도 안 한 앳된 처녀에게 남자아이 둘을 돌보는 유모 일을 맡긴 것이다.


붙임성이 좋게 먼저 다가왔던 건 윌리엄이 아니라 필립이었다.


필립은 꽃을 꺾어 오거나 풀잎으로 반지를 만들어 마리아를 기쁘게 해 주었다. 예쁜 꽃을 꺾어 주겠다고 팔꿈치와 무릎에 상처가 가시질 않았다. 마리아가 활짝 웃어주고 안아 주면 필립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반대로 윌리엄은 한참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갈 즈음에 떠나보내야 해서 마리아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윌리엄은 매번 살갑게 다가와 손을 잡고 볼을 부비는 마리아의 손길에서 엄마의 흔적이 사라질 것만 같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리아를 놀라게 하고 괴롭히기 일쑤였다.


더러운 것을 마리아 옷에 묻히고 도망가거나 옷 속에 벌레를 잡아넣고 도망가기도 했다.


마리아는 그럴 때마다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윌리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고 윌리엄은 그럴 때마다 뒷걸음질 쳤다.


어느 날 윌리엄은 마리아를 제대로 골려주기로 결심했다. 정원 한 구석에 사람 하나가 빠져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파인 구멍이 있었는데 마리아를 불러 그 구멍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 보란 듯이 빠뜨린 것이다.


하필 그날 오후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원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고 빗소리에 묻혀 마리아가 외치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마리아가 없어진  알고 윌리엄을 닦달해 찾아낼  있었는데 아래로 떨어지면서 크게 다친 데다가 물을 많이 먹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마리아는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마리아, 의원이 그러는데…이 상처..계속 안 없어질 거래. 미안해.. 마리아..”


“어쩔 수 없죠. 이 상처,  왕자님 줄게요. 이제 이 상처는 왕자님 거니까 하나도 안 미안하죠? 아직 제 몸에는 상처가 없는 곳이 훨씬 많아요! 보실래요?”


이때부터 윌리엄은 마리아에게 급속도로 젖어들었다. 함께 지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같이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마리아가 진심을 다해 윌리엄에게 다가갈수록 윌리엄 또한 진심을 다해 마리아에게 다가왔다.


마리아는 윌리엄의 마음이 어머니를 대하는 아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윌리엄이 12살이 되었을 때 마리아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마리아는 누구랑 결혼할 거야?”


“글쎄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겠지요? 왕자님 벌써부터 결혼을 생각하세요?”


“아버지가 그러는데 나는 결혼할 사람이 정해져 있대… 사랑하지도 않는데….”


“아직 못 만나서 그렇지.. 만나면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럴 일 없어. 난 ..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어머, 정말요? 알려주세요!!”


“안 돼! 마리아는 몰라도 돼.. 나.. 갈 거야!”


마리아는 이 날 이후 윌리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과 많이 달라진 걸 느꼈다.


아무렇지 않게 전처럼 마주하려고 했지만 그건 진심으로 다가오는 윌리엄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윌리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윌리엄이 열세 살이 되자 왕위 계승을 위한 교육으로 마리아와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고 필립이 열세 살이 되면 성을 떠나거나 다른 자리로 보내질 터였다.


마리아를 만나지 못하는 날이면 윌리엄은 언제나 마리아의 침실로 찾아왔다. 마리아의 무릎을 베고 그날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하다가 곤히 잠들었고 시녀들이 윌리엄을 침실로 옮겨갔다.


열다섯의 윌리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키는 마리아를 훌쩍 넘어선 지 오래였고 목소리는 낮고 차분한 음성으로 변해갔다.


마리아는 심란했다. 어느 순간부터 윌리엄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온종일 피곤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필립의 잠자리를 봐주고 나면 그때부터 가슴의 떨림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윌리엄은 그날도 어김없이 마리아의 침실로 찾아와 무릎베개를 하고서는 하루 있었던 일을 재잘거렸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던 마리아는 전처럼 자연스럽게 대할 수가 없었다.


“마리아, 오늘 어디 아파?”


“아.. 아니에요. 왕자님.”


윌리엄은 바로 앉아 마리아에게 혹시 열이 나는지 이마를 짚어 보려고 손을 뻗었다. 순간 놀란 마리아는 윌리엄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이 한 행동에 놀라 손 끝을 입에 갖다 댄 채 부들부들 떨며 윌리엄의 시선을 계속 피했다.


윌리엄은 그 순간의 동요를 놓치지 않았고 마리아의 손을 그대로 앞으로 끌어당겼다. 마리아는 윌리엄의 입술을 피하지 않았다.


“마리아도 혹시 나와 같은 마음이야?”


그날 밤 윌리엄은 자기 침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


“마..리아가..왜 여기 있는 거야?”


윌리엄은 마리아의 팔을 붙잡고 흔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왕비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어떤 말을 어디서 어떻게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계속 입을 열었다 다물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윌리엄 왕자님…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이에요… “


“마리아, 아니 우선 여기를.... “


문득 왕비를 데리고 성을 벗어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보다 먼저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여기 있으면 위험해. 나가서 이야기하자 얼른”


윌리엄은 왕비의 손을 붙잡고 성모상 그림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때 뒤에서 비명과 함께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컥, 크억.. 컥..”


윌리엄이 고개를 돌리자 왕비 주변으로 핏자국이 낭자하게 흩어져 있었다. 왕비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계속 피를 토해냈다.


“마리아! 마리아! ..아니.. 마리아.. 정신 차려! 나한테 기대 얼른 마리아!.. “


“와..자.님.. 어..른 가..세요.”


“안 돼! 마리아.. 같이.. 가야 해.. 마리아!”


왕비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성모상 그림을 있는 힘껏 당겨 윌리엄 왕자를 안쪽으로 밀었다.


그 순간 지어 보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소매 끝을 걷어 올렸다. 그때 그 선명한 상처가 드러났다.


“저..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마리아… 마리아!…안 돼 마리아…”


왕비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밖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안으로 밀고 들어올 낌새가 보였다.


성모상 그림이 돌아가고 윌리엄은 마리아에게 점점 멀어졌다. 피로 얼룩진 마리아의 환한 미소를 끊임없이 가리우는 제 눈물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잡견실에 사람들이 밀고 들어와 피를 토하고 쓰러진 왕비를 발견하자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성 밑에서 정원 일일 하던 여인들이 입을 열었다.


“접견실에 뭔일 있나? 사람들 모여있는 것 같은데… 아, 맞다! 최근에 왕비님 수발드는 애 중에 새로 들어온 애 있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아니, 어제 어떤 여자애가 왕비님 내일 오전 일정을 묻더라고. 그래서 정원 티타임 있을 거라고 말해줬는데.. 돌아서 생각해보니까 처음 들어오는 애 아니면 물을 리가 없잖아. 왕비님 오전 일정이야 늘 똑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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