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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Apr 12.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17

17화 : 출생의 비밀

[지난 줄거리]

아르델 왕국은 필립 왕자의 정략결혼 상대로 피오나 공주를 요구한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피오나 국왕은 왕위를 선양해서라도 공주를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솔르와 도나우는 피오나 왕국에 머물면서  일을 함께 도왔다. 솔르는 아르델 왕국의 막무가내 외교에 맞불을 놓을 생각으로 시리우스를 여장하여 피오나 공주로 보내자는 제안을 한다.


17 : 출생의 비밀


—-


라오스는 파울에게 온 서신을 붙들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르델 왕국에서도 윌리엄 왕자의 결혼을 서두르겠다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게 눈에 띄었다.


이븐 왕국에서도 백설 공주의 행방을 빌미로 왕비를 압박하고 있을 테고 파울의 우려처럼 왕비 암살의 음모는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르델 국왕은 윌리엄 왕자의 제거를 염두에 두고 있기에 애초에 계획에도 없었던 필립 왕자의 정략결혼을 서둘렀다.


국왕은 윌리엄 왕자가 3년 전의 일로 여전히 불손한 생각을 품고 있음을 알아채고 이븐 왕국을 손아귀에 넣으면 윌리엄 왕자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십 년을 넘게 공들인 이븐 왕국과 정략결혼을 앞에 두고 그 어느 때보다 예민했다. 특히 이븐 왕국에서 백설을 감추고 결혼을 방해하는 왕비가 특히 눈엣가시였다.


이븐 왕국의 대신들에게는 언제든 기회를 봐서 죽여도 좋다는 사인을 보내 두었으나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한편, 백설과 윌리엄은 호송된 이후 감옥에 계속 갇혀있었다.


윌리엄에게는 이제 곧 있을 정략결혼 때까지 숨죽이고 얌전히 있을 것을 강요했다.


백설의 처분을 두고서는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 어차피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니 조용히 처리해버리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아르델 국왕은 뭔가 찝찝했다. 어차피 죽이든 살리든 크게 달라질 사안은 아니니 감옥에 가두어 놓고 그 아이의 정체 묻기에 쓸데없는 힘을 빼지 않기로 했다.


늦은 밤 아르델 왕국의 지하 감옥에 불이 꺼졌다. 간수는 밖으로 나가 꺼진 불씨를 살리기 위해 자리를 떴다.


윌리엄은 칠흑같이 어두운 감옥 속에서 애써 두리번거리면서 조심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헤이온, 거기 있느냐?”


“왕자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난 다 괜찮다. 너는?”


“저도 괜찮습니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윌리엄이었다.


“…헤이온, 네가 말에서 떨어져 쓰러졌을 때 말이다. 그때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


백설은 낮게 울려 퍼지는 윌리엄의 목소리가 무척 애틋하게 다가왔다.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마음이다. 네가 말에서 떨어져 쓰러진 그 순간 한 때 나를 괴롭게 했던 그 마음이 되살아 오는 것만 같았다.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왕자님, 거울은 잘 가지고 계신지요…”


“거울은 가슴 안쪽에…”


“자작나무 숲을 걸어 들어갈 때 저는 왕자님 손만 쳐다보았습니다.”


“거울을 돌려주지 않을까 봐서?”


“왕자님 손에 들린 거울을 보는 순간 왕자님을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왕자님 손만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 목덜미에 독충이 앉아 피를 빨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윌리엄이 내뱉은 숨결에 가쁜 떨림이 느껴졌다.


“헤이온…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너를 헤이온이라 부를 것이다. 너가 나에게 알려 준 그 이름으로 계속 너를 불러도 되겠느냐?”


“네, 저는 왕자님이 불러 주시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헤이온이 될 것입니다.”



—-



같은 시각 아르델 국왕의 침실에는 필립 왕자가 있었다.


“사신단 일이 잘 마무리되고 나니 모든 게 일사천리구나. 피오나 왕국에서도 군말 없이 너와 정략결혼할 공주를 보낸다는 서신을 받았다. 필립, 지금 해온 것처럼만 해다오. 부디 애비를 실망시키지 말아라.”


“네, 국왕 폐하”


필립은 왕의 침실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침소로 들지 않고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간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자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없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의 윌리엄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사신단 떠나기 전에 내게 남겼던 말 기억해?”


윌리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립은 굳게 다문 윌리엄의 입술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걱정 마, 내가 그 약속 지켜줄테니..한달 후면 모든 게 다 끝날 거야. “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려 백설을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렸다.


“내 너를 자작나무 숲에 묻어두고 오지 못한 게 한이다. 감히 계집 주제에 아르델 왕국을 농락하려들다니. 넌 조만간 내 손으로 없애줄 테다. 아, 혼자 갈까 심심해할 필요는 없어. 네 옆에 있는 윌리엄도 같이 보내줄 거니까.”


필립은 지하감옥 입구를 향해 걸어 나가다가 문 앞에 멈추어 서서 간수를 불렀다.


“둘을 각자 다른 감옥에 가두어라.”



—-



아르델 왕국 성문 경비대원 아론은 일을 마무리하고 걸음을 서둘러 돌아가는 길이었다. 숨이 차올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론은 허리를 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히 반짝이는 크고 작은 별 사이에서 유독 밝은 빛을 내뿜는 두 개의 별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광경.. 아론은 불현듯 라오스를 처음 만났던 그날 일이 떠올랐다.


18년 전 산달이 찬 왕비는 이제 곧 태어날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통이 하루를 넘기고 왕비는 실신하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아기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상태가 이상함을 느끼고 의원을 불러 왕비 뱃속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았다.


의원은 고통으로 신음하는 왕비의 배를 눌러보았다. 머리가 두 개가 잡혔다. 의원이 배를 누른 자극에 반응이 왔는지 한 명의 아이가 왕비 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그 아이와 동시에 또 다른 아이가 같이 딸려 나왔다. 마치 두 아이가 손을 맞잡고 같이 나오는 듯했다.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아르델 국왕은 두 번째로 나온 아기를 조용히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왕위를 계승할 장남의 자리가 사내아이 쌍둥이라는 사실은 여러모로 좋지 않은 징조였다. 두 번째로 나온 아기는 강보에 싸여 아론의 두 손에 전달되었다. 성 사람들 모두 막 태어난 아기를 처리하는 일을 꺼렸다.


아론은 근처에 있던 망치를 들고나가서는 요란하게 땅을 몇 번 치고 묻고 오겠다며 그 자리를 얼른 떴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아이를 싼 강보를 들고 계속 뛰고 또 뛰었다. 혹시나 누군가 쫓아오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기를 수십 번 한참을 가서 성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즈음에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댄 채 두 손으로 꽉 쥐고 온 아기를 슬쩍 열어보았다. 아직 눈도 채 뜨지 못한 채 입을 옹알거리는 아이였다.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된 라오스를 눈앞에 두고 아론은 지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이제 이 아이를 옆에 두고 도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제가 윌리엄 왕자와 많이 닮았나요?”


평소와 사뭇 다른 낌새를 차린 아론은 유심히 라오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똑같이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피는 속일 수 없어 그런지 눈,코,입 생김새가 많이 비슷해서 같은 옷을 입혀 놓고 비슷한 흉내를 내면 사람들이 속아 넘어갈지도 모르겠구나.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것이냐?”


“윌리엄 왕자를 잠시 감옥에서 빼내려고 합니다. 제가 대신 감옥에 들어가고요.”


“그게 무슨.. 말이냐?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당장 내일…윌리엄 왕자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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