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음모
[지난 줄거리]
윌리엄 왕자가 맞은 화살은 그의 동생 필립 왕자가 쏜 것이었다. 필립은 윌리엄과 백설을 포박하여 본국으로 호송한다.
한편 라오스 일행은 백설을 구출하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일시일각을 다투는 사태를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세 나라로 흩어지기로 결정한다. 라오스가 아르델 왕국으로 레아, 미뉴에트, 파울이 이븐 왕국으로 솔르와 도나우가 피오나 왕국으로 향했다.
15화 :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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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왕국은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왕비는 신하들의 음모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어디서든 날아오는 칼날에 대비해야만 했다. 백설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내야만 했다.
매일 같이 신하들의 등쌀에 시달리자 하루가 일주일 같았고 일주일은 1년과도 같게 느껴졌다. 이제는 더 싸울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무너질 즈음에 파울과 레아 미뉴에트가 이븐 왕국에 도착했다.
“실..패했다고요?”
왕비는 크게 실망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파울은 틈을 주지 않고 현재까지 파악된 아르델 왕국의 동향을 자세하게 전했다.
“아르델 왕국에서 갈등의 조짐이 보인다면… 어쩌면 그쪽에서 먼저 승부를 걸어올 수도…”
“아르델 왕국의 왕자들을 잘 아시나요?”
“..아니요, 전혀. 다만… 왕위 계승을 서두르는 모양새를 보니 무언가 준비하는 게 있지 않나 하고 넘겨짚어 본 것입니다.”
“왕비님, 친구들 모두 각 나라에 흩어져서 서로의 상황을 보고 하기로 하였사옵니다. 라오스는 지금 아르델 왕국에 있고 솔르와 도나우는 피오나 왕국에 가 있습니다. 저와 레아 그리고 미뉴에트는 이븐 왕국에서 왕비님을 돕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허나 그대들이 위험해질까 심히 걱정이 됩니다.”
왕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했다.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눈앞에 서 있는 젊은 청년들까지 휘말리게 해 서는 안된다며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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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븐 왕국의 성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레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에 앉아 조용히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시녀들이 숙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정말이야? 왕비님을 시해한다니 그게 무슨 망측한 말이야?”
“어제 내 귀로 똑똑히 들었어. 밤늦게까지 대신들이 모여 긴밀히 이야기를 나누더라니까.”
“이거 알려야 하는 거 아냐?”
“미쳤어? 누구 송장 치르라고. 원래 성 안에 사는 시녀들은 장님 귀머거리처럼 사는 거야. 방금 들은 건 절대 모른 척 해. 알았지?”
정원을 정리하던 시녀들이 몇 걸음 짝 앞에 서 있는 레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얼른 그 자리를 떴다. 레아는 뭔가 불안한 예감이 들어 당장 친구들에게 알리고 왕비에게 찾아갔다.
“왕비님 피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간 당하게 될지 몰라요.”
레아가 사정하며 매달렸다. 미뉴에트와 파울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왕비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늘 있던 일인 걸요. 그것보다 지금 왕비인 제가 자리를 비우면 공주의 안위가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어제 전해 준 대로 아르델 왕국의 왕위 계승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면 이븐 왕국에도 곧 서신이 도착할 것입니다. 우선 그것을 기다려보도록 해요.”
왕비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르델 왕국에서 정략결혼을 두고 새로운 제안을 보내왔다. 아르델 왕국 윌리엄 왕자의 혼사를 서두르고 싶다는 게 그 요지였으나 왜 윌리엄 왕자의 혼사를 서둘러야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븐 왕국 신하들은 아르델 왕국이 보낸 서신에 담긴 앞뒤 맥락을 짚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결혼을 서두르는 일에만 혈안이 되었다.
죽기 전 왕이 남긴 서신에 담긴 내용에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신하들 중에 이븐 왕국의 번영과 안녕을 바라는 이들은 없었다. 오로지 백설 공주와 윌리엄 왕자의 정략결혼을 성사 키시고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속국이 되길 바라는 눈치였다.
“왕비님, 백설 공주님을 모셔 오시든지 아니면 아르델 왕국의 서신에 만족할 만한 대안을 마련하신다 약조하지 않으셨사옵니까. 둘 중 어느 것 하나 행하신 게 없사온데 저희가 어찌 왕비님을 믿고 이 나라의 정사를 맡기겠사옵니까?”
“공주의 병이 많이 호전되었다 하니 이제 곧 성으로 불러들이려 했습니다. 다만, 아르델 왕국에서 보낸 서신에 그 어떤 의문점도 갖지 않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따르는 것이 괜찮은 일이겠습니까?
결혼식을 서두르기 원한다면 마땅한 이유를 제시해야 할 터인데 대신들께서는 어찌 이런 부분을 짚지 않고 계속 아르델 왕국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려 하십니까? 정녕 그대들은 어느 나라의 신하입니까?”
신하들은 맞받아칠 말이 없자 민망했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날 밤 신하들은 애초에 계획했던 일을 서두르기로 결심했다. 왕비가 두 왕국 간의 문제를 그렇게 깊이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아르델 왕국에서도 그리 문제 삼지 않을 테니 그냥 없애버리는 게 어떻겠소?”
“백설 공주의 행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자가 왕비밖에 없소. 우선 백설 공주를 데려올 때까지는 버텨야 하오.”
“대신들 중에 백설 공주의 얼굴을 기억하는 자가 아무도 없단 말이오?”
“그게.. 어린 시절에 국왕 폐하와 함께 정원에 있었던 때 모습은 언뜻 기억은 나오. 머리색이 독특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외에는 잘 …”
“공주의 시중을 들었던 시녀들을 불러 수소문을 해 보면…”
“왕비가 알아챌 것이오.”
“그럼 이렇게 하세. 왕비 말로는 공주가 곧 성으로 돌아온다 했으니 공주가 성에 도착한다는 기별을 받는 대로 왕비를 처리합시다.”
신하들은 말소리를 줄이고 시기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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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왕비는 파울과 레아 미뉴에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왕비님, 오늘은 대신들과 별일 없으셨는지요?”
파울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왕비는 구름 한 점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섭섭할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아 만찬을 즐길까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오늘은 다 잊고 마음껏 즐기도록 해요.”
준비한 왕비의 정성과 마음을 생각해 세 사람은 그 시간을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너나 할 거 없이 백설과 지내며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경쟁하듯이 펼쳐 놓았는데 이를 들으며 왕비는 무척 행복해했다.
“그동안 세 사람을 비롯해 백설과 함께 해 준 일곱 명의 친구들 모두 정말 고마워요. 이 자리에 있지 못한 친구들에게도 이 말을 꼭 전해주었으면 해요.”
“왕비님,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만나서 직접 전해주셔요. 애들이 훨씬 좋아할 거예요.”
미뉴에트의 말에 왕비님은 지그시 세 사람의 눈을 하나씩 마주치며 말을 이어갔다.
“제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미안하지만 이 자리에서 세 사람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