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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Apr 08.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13

13화 : 세 방향의 시선

[지난 줄거리]

아르델 국왕이 윌리엄 왕자의 계획을 알아챘다. 나랏일에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았던 왕자가 갑작스레 일을 벌리는 모양새가 달갑지 않아 줄곧 뒤를 캐고 있던 차에 모든 사실이 드러나고  것이다.

윌리엄은 어린 시절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유모 마리아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다. 3 ,  마음이 넘지 말아야  선을 넘어 마리아는 쫓겨나고 윌리엄은 감옥에 갇혔다.

윌리엄의 동생 필립은 일찍이  사실을 알았고 연유를   없이 치미는 분노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왕은 뒤틀어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필립 왕자를 부른다.


13화 : 세 방향의 시선


—-


사신단이 떠난 지 사흘 째 되는 날. 윌리엄이 이끄는 사신단은 피오나 왕국 경계를 넘어가는 길목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길게 뻗은 새하얀 자작나무 숲이 광경이 장대하게 펼쳐졌다.


백설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곱씹느라 눈앞에 보이는 경치에 도통 집중할 수 없었다.


—-


“헤이온, 내일 떠나거라. 지도를 보니 평원을 넘어 피오나 왕국으로 가는 길에 길게 뻗은 자작나무 숲이 있다. 촘촘하게 솟은 나무 사이로 몸을 잘 숨기면 들키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작나무 숲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븐 왕국의 경계와도 가까우니 이 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다.”


“제가 도망치면 왕자님은.. 정말 괜찮으신가요?”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보내는 것이다. 서찰을 반드시 이븐 왕국에 전달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렇지만… 왕자님이…”


“이쯤이면 아르델 왕국에서도 이상한 낌새를 채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일 떠나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잡혀서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백설은 걱정을 속으로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어쩌면 너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겠구나. 헤이온, 조금 무례한 부탁 하나 들어주겠느냐?”


“무례한…부탁이요?”


무릎을 빌려줄  있겠느냐? 예전에는 무릎만 베고 누우면 바로 잠들곤 했었는데..갑자기 그때가 그리워서."


백설은 순간 잔뜩 긴장했다가 맥이 풀려버렸다. 괜찮은 듯 아쉬운 듯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 무릎이라면…여기”


윌리엄은 백설의 무릎에 살포시 머리를 갖다 댔다. 백설은 순간 온몸의 솜털이 일제히 바짝 솟아오른 것만 같았다. 왕자는 백설의 무릎을 베고서는 편안한 듯 좌우로 머리를 움직였다.


“헤이온 널 보면 신기하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떠올라… 생김새는 전혀 다른데… 그 여인도 너처럼 밝고 명랑하고 선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또 뭐가 비슷했냐면.. “


왕자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백설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스러워서 예뻐 보이는 거.. 그게 너와 닮았어… 참, 내일 너가 도망칠 때 서로 신호를 정해야 되는데 그걸 깜박했네.”


얼굴이 대놓고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백설은 당황해서 자기가 어떤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횡설수설했다.


“아.. 깜박.. 그게.. 네.. “


“거울로 하자! 내가 너한테 빌린 거울 돌려줘야 하잖아. 거울을 신호로 정하는 거야. 거울을 건네주면 그때 도망치는 거야. 알았지?”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자작나무 숲 입구에 와 있었다. 윌리엄은 뒤를 돌아 눈을 찡긋해 보였다. 얼굴과 목덜미에 열이 후끈 달아올랐다.


왕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피했다. 이제 백설은 왕자가 건네주는 거울을 돌려받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한다.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자작나무 숲 안으로 들어섰다. 백설은 윌리엄 왕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 왕자의 손에서 거울이 나올지 알 수 없었고 어떤 모습을 마지막으로 간직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심장 속 고동소리가 몸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백설은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앞이 어질어질했다. 이제 곧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계속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윌리엄이 손짓을 하며 무어라 말하는 것 같은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백설은 말 아래로 쓰러졌다. 털썩 쓰러진 나무 위에 꽂힌 화살 위에 달린 빨간색 줄이 나풀거렸다.


“헤이온! 여봐라, 길을 멈추라.”


윌리엄은 말에서 내려 쓰러진 백설에게 달려갔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손으로 볼을 어루만지며 소리쳤다.


“헤이온, 정신차리거라!.. 일어나 보거라! 의원 없느냐 … 의원을 불러오너라.”


의료를 담당하는 병사가 달려와 백설의 몸 상태를 살폈다. 목덜미에 크게 부풀어 오른 상처를 발견했다. 독충에게 물린 흔적이었다.


“왕자님, 목덜미를 독충에게 물린 것 같사옵니다. 정확히 어떤 벌레가 물었는지는 알 수가 없사오나, 높은 열을 동반하는 독충의 경우에는 열이 갑자기 올라가 눈이 머는 수가 있사옵니다…우선 열을 낮추는 게 시급합니다.”


—-


“어, 저기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보여. 사신단 맞는 거 같아. 어라? 뭔 일 있나 본데?”


나무 위로 올라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도나우가 말했다.


“야, 너 내려와! 답답해서 내가 봐야겠어.”


솔르가 도나우를 끌어내리고 망원경을 가로채서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우리가 표시해 둔 나무 밑에 와 있는데? 일부러 저기에 멈춰있는 건가? 아니 왕자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둘이라서 누가 백설인지 조금 헷갈리는데?”


라오스가 나무 위로 올라서 솔르의 망원경을 건네받았다.


“누워있는 애가 백설인 것 같아. 조금 더 체구가 작아. 그리고 그 위에서 맴돌고 있는 게 아마 이번 사절단을 이끄는 윌리엄 왕자겠지?”


솔르가 라오스에게서 다시 망원경을 낚아챘다.


“오호라, 저기 큰 놈이 윌리엄이라는 거지? 제법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녀석일세. 아니, 그런데 저 자식 지금 뭐하는 짓이야? 백설이 눕혀놓고 옷을 벗기고 있잖아?”


밑에서 내려와 있던 도나우가 그 말을 듣자마자 흥분해서 언성을 높였다.


“뭐라고? 저 자식이 돌았나? 지금 당장 죽여버리겠어!”


화살을 꺼내 활시위를 당기려는 도나우를 레아와 미뉴에트가 말렸다. 갑자기 위에서 솔르가 크게 소리 질렀다.


“야! 너 미쳤어? 진짜 화살을 쏘면 어떡해? 제정신이야?”


“무슨 소리야? 화살 안 쐈어!”


“저 녀석 방금 화살에 맞아 쓰러졌어!”


—-


윌리엄은 헤이온의 열을 내리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옷부터 벗겨내기 시작했다. 다른 병사들은 열을 식히기 위해 근처 강가에 물을 길어 갔다.


헤이온의 살갗에 손끝이 닿을 때마다 뜨거운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혹시나 심장이 멈춘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백설의 가슴께에 귀를 갖다 댔다. 미약하지만 심장은 뛰고 있었다.


윌리엄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와 윌리엄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아악!”


화살에 맞은 왕자를 보고 당황하여 병사들은 허둥지둥 사방을 살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아르델 왕국 문양의 깃발을 앞세운 병사 부대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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