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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Apr 11.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16

16화 : 시리우스의 결심

지난 줄거리] 

백설 공주을 내놓으라는 신하들의 역정을 물리치며 간신히 버텨 왔던 왕비에게 백설을 구하지 못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파울 일행은 이븐 왕국에 머물면서 그간 상황을 전하며   있는 최선을 다해 왕비의 처지를 돕고자 했다. 그러던  레아는 신하들이 왕비 암살을 모의하는  들었다는 시녀의 이야기를 엿듣고  사실을 왕비에게 알린다.

한편 아르델 왕국은 윌리엄과 백설을 잡아온  정략결혼은 한층  서두르기 위해 이븐 왕국에 서신을 보내고 왕비는 파울과 미뉴에트 레아에게 마지막 부탁을 전하려 한다.


16 : 시리우스의 결심


—-


“정략결혼이라니?”


도나우는 마치 제 일인 양 흥분해서는 언성을 높였다. 피오나는 아까부터 말없이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도나우와 솔르는 자작나무 숲에서 헤어진 후 가장 먼저 피오나 왕국에 도착했다. 시리우스와 만나 기쁨의 회포를 나누는 것도 잠시 아르델 왕국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에 머리를 싸매야만 했다.


아르델 왕국은 역시 치밀했다. 사신단이 돌아간 다음 날 피오나 왕국으로 서신을 보내왔다.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둘째 왕자인 필립이 결혼을 하려는데 그 상대로 피오나 공주를 원한다는 것이다.


윌리엄의 정략결혼에 힘을 쏟은 나머지 필립의 정략결혼에 때가 많이 늦어 혼처를 고심하고 있었는데 마침 피오나 공주가 아직 정략을 맺은 자가 없다 하니 이를 계기로 결혼도 성사시키고 양국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것이었다.


어수선한 왕위 계승 갈등을 두 번의 정략결혼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두 나라를 동시에 지배하에 두려는 속셈이었다.


“정략결혼 까짓 거 거절하면 안 되는 거야? 본인이 싫다고 하면 되잖아. 피오나도 솔직히 가기 싫을 테고.”


“아르델 왕국의 정략결혼 요구는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야. 이를 거절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해 올 거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솔르의 말에 시리우스가 작은 목소리로 힘주어 대답했다.


“이븐 왕국은 애초에 군사력으로 볼모가 잡힌 상태에서 정략결혼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 거절하는 순간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해야 하나… “


피오나가 시리우스 말에 덧붙여 설명했다.


“근데 이 질문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매사에 그리 철저한 아르델 왕국에서 왜 둘째 왕자의 정략결혼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윌리엄 왕자의 결혼을 성사시키는데 힘을 써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변명 같잖아. 애초에 둘째 왕자는 정략결혼을 시킬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그럴 필요가 생긴 게 아닐까 하고…”


솔르가 가만히 질문다운 질문을 던진 도나우를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맞장구쳤다.


“내 말이! 분명 아르델 왕국에서는 어떻게서든 둘째 왕자의 정략결혼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는 말인데..”


“아버지께서도 한 때는 정략결혼으로 강한 나라에 기대려는 마음이 없으셨던 건 아니야. 나도 샤론 왕국에 정략결혼 갔다가 퇴짜 맞은 적 있거든.

어차피 결혼을 하나 안 하나 그들 수중에 나라가 넘어가는 모양새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자녀들을 지키고 국가 권위를 아르델 왕국에게 넘기겠다는 생각을 하시고 계신 것 같아.”


피오나 국왕은 부인을 잃고 나서부터 왕좌를 지키는 일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왕 본인에게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시리우스에게 왕위를 넘기려고 강하게 닦달한 것도 피오나의 정략결혼처를 찾아 헤맸던 것도 그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피오나 국왕은 왕좌에 욕심이 없고 딸과 아들에게도 왕좌를 빌미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르델 왕국으로부터 정략결혼을 요구하는 서신이 왔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는 피오나를 향해 나라를 넘길지언정 공주를 넘기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국왕께서 그런 생각이시라면 말이지… 장난질을 해 보면 어때?”


심각한 세 사람의 분위기에 휘말리 않는 솔르가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솔깃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아니, 생각 좀 해 봐! 아르델 왕국에서도 백설 데리고 왕자라고 우기고 쳐들어오려고 했잖아. 안 그래? 고걸 역으로 이용해 먹자는 거지. 이거 잘만 먹히면 아르델 왕국 제대로 물 먹일 수 있다니까!”


“그니까 너가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야?”


약간 짜증난 듯 투덜대는 도나우의 말에 솔르는 번쩍 일어나 시리우스를 자기 앞으로 끌어다 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시리우스를 피오나 공주로 둔갑시켜 보내는 거야. 내가 예전부터 생각했거든. 이 녀석 꾸며놓으면 웬만한 여자애들 울고 간다니까. 게다가 목소리도 변성이 심하지 않아서 위화감이 전혀 없어.”


피오나와 도나우 그리고 솔르는 시리우스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피오나는 아무래도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건 아무래도 안 돼! 윌리엄 왕자는 시비를 걸려고 모두가 다 아는 거짓말을 했을 뿐이지만 시리우스는 진짜 피오나 공주가 되어 모두를 속여야 해. 들켰다간 시리우스가 엄청난 위험에 빠진다고.”


도나우는 시리우스가 꾸며 놓으면 예쁘장할 거라는 솔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도 아무래도 피오나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솔르.. 이번엔 너무 나갔다. 시리우스한테 공주 차림으로 정략결혼을 하러 가라니..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엄청난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흡족했던 솔르는 두 사람의 반응에 맥이 빠져서는 하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알았어, 그냥 해 본 소리야. 흥분하기는..”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솔르 앞에서 세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시리우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나 할게!”


—-



그날 밤 시리우스는 국왕의 침소를 찾아갔다.


“여장을 하고 아르델 왕국에 가겠다고? 겁도 많은 녀석이 대체 무슨 오기로 그런 말을 하였느냐.”


“아버지, 나약하고 여리게 태어난 제가 노여운 적은 없으신지요?”


“한 번도..”


“저는 참으로 많았습니다. 나약해서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하고 보호해 줄 수 없는 자신이 무척이나 화가 나고 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을 하는데 거미줄에 걸려 나가지 못하고 있는 나비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냥 두었다간 거미 밥이 될 게 뻔했습니다.

저는 그날 거미에게 물리고 나비 한 마리를 구해주었습니다. 매번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온실 속에 화초처럼 살았던 제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살린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시리우스, 네가 약하고 여리게 태어난 건 결코 잘못이 아니고 흉이 아니다. 그만큼 강하고 힘이 센 자에게 도움을 받고 너는 너의 자리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그것이 서로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이 돕고 살아가는 삶의 이치가 아니더냐.”


“아니요, 아버지. 힘이 없어도 용기가 부족해도 자기 스스로 누군가를 구해야만 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핑계 삼아 누구를 구해야 하는 기회를 포기하거나 놓치는 순간 평생 그 순간을 후회하며 죄책감과 미안함에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아들아..”


“왕국을 떠나 1년간 아버지와 누나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쳐 나온 제 자신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나만 힘든 게 아니었음에도 저는 아버지와 누나를 바라보지 못했고 두 사람을 지키고 구해야 하는 자리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다 괜찮다. 이렇게 다시 돌아왔지 않느냐.. 아들아 나도 네 누나도 다 괜찮다.”


“아버지, 제가 많이 좋아하는 아이가 아르델 왕국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 아이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누구보다 먼저 통나무 집에서 나왔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제 서야 아르델 왕국에 가서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비록 성별을 속여야 하고 들키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지만 지금 그 아이를 구하러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저는 또 평생을 후회하며 살 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가 백설 공주인 게냐..”


시리우스는 눈물로 답을 대신했다.


—-


“내 안목이 탁월한 줄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공주로 분장한 시리우스는 솔르의 여느 공주님 못지않게 눈이 부시게 빛나고 아름다웠다. 도나우는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운 시리우스 모습에 적응이 안 되는지 침만 꿀꺽꿀꺽 삼키며 전처럼 말을 걸지 못했다.


“누나, 걱정하지마.. 잘 다녀올게! 아버지 .. 잘 부탁해.”


피오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시리우스를 꼭 안아주고 양볼을 비벼가며 펑펑 울었다. 시리우스도 누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피오나 적당히 좀 해라. 치장한 거 헛수고로 돌릴 참이야? 이제 출발한다.”


“분위기 깨는 건 하여튼.. 공주님을 호위하는 무사 두 분 .. 제 동생 잘 부탁해요..”


피오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솔르와 도나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친구는 대답 대신 한 손을 높이 치켜들고 피오나를 향해 흔들어 주었다.


세 사람은 한동안 걸으면서 서로 말이 없었다. 솔르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역시나 먼저 말을 꺼냈다.


“시리우스, 도나우가 여자로 변한 너에게 심히 관심이 있나 봐. 저기 땀 삐질삐질 흘리는 거 보여?”


“쓸데없는 소리 좀 작작 해라. 정말!”


“화내니까 이거 더 의심스럽네. 시리우스, 손 한 번 잡아 줘!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왜 그렇게 시리우스 얼굴을 힐끔힐끔 봐?”


“아니, 시리우스 얼굴이 누구 좀 닮은 거 같아서...”


“너 말을 듣고 보니.. 예쁘긴 한데 낯익은 얼굴이기도 하다.. 누구지..?”


솔르와 도나우는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서로를 향해 손을 뻗으며 동시에 소리쳤다.


“왕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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