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된 마음 품기

배온유 <유원, 2020>

by Skyblue

1.



피타고라스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공식이 있지, 아마? 직각 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 안에 숨겨진 비밀 말이야. 통칭, 피타고라스 정리로 통하는 공식. 직각 삼각형이라면 제일 긴 빗변의 길이를 제곱한 값은 나머지 두 변의 길이를 제곱한 값을 더한 것과 같다.

어느 교양 프로그램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가지고 방송을 한 적이 있어.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측량 도구까지 활용해 정확한 직각을 가진 큰 직각 삼각형을 그려. 그리고 그 변의 길이를 재 보고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라 제곱하여 합한 값이 등식을 이루는지 계산해봤어. 역시나 정확하게 들어맞았어.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정리는 수천 년간 신념과도 같이 지켜져 온 불변의 '진리'와도 같은 것일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직각 삼각형을 그려 보고 그 직각 삼각형 안에서도 정리가 성립하는지 계산해보았던 거야. 실험 결과는 맞지 않았어. 오히려 작은 두 변의 길이를 제곱한 것보다 빗변을 제곱한 값이 더 크게 나왔던 거야. 더 나아가 실험은 우리나라에서 시작하여 피타고라스가 태어난 그리스 사모스 섬으로 직선을 그은 후 그곳에 맞추어 직각삼각형을 또 그려 보는데 결과는 역시나 맞지 않았어. 오히려 그 오차가 더 크게 나오고 말았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피타고라스에게 속아온 걸까? 아니, 그렇지 않아. 피타고라스가 속은 거지. 피타고라스가 생각한 지구는 평면이었거든. 지구와 같은 곡면에 그려지는 삼각형은 그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거야. 심지어는 지구에서 그려보는 삼각형 중에는 세 각의 합이 270도가 되는 경우도 있어. 평면이었다면 180도를 넘어서면 안 되지만 말이야.


무슨 공식이 평면에서는 맞고, 곡면에는 맞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까? 너무 생뚱맞은 곳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려니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오늘 전하려는 책의 주제가 이런 모순된 마음에 관한 것이야. 어떠한 계기로 만들어진 관계라 할지라도 한 가지 마음만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더라고.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분노와 증오의 마음이 같이 맴도는 것 같아서 말이야.


2.




<유원>의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은 유원이야. 성은 유이고 이름이 원이지. 이 아이에게 특별한 사연이 있어. 기적과도 같이 살아난 아이, 그리고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살아난 아이라는 거야. 원이가 여섯 살 때 집에서 큰 불이 났어. 당시 원이는 언니와 같이 집에 있었고, 사태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탈출하기에도 늦은 시점이었어. 원이네 집은 11층이었거든. 매캐한 연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의식조차 희미해져 가는 그때 언니는 동생 원이를 이불에 둘둘 말아서 베란다 밖으로 던져. 그때 마침 밑을 지나가던 아저씨는 망설임도 없이 그 아이를 받아내고, 그 과정에서 다리가 크게 으스러지는 바람에 장애인이 되고 말았어. 언니는 뒤늦게 구출되어 나왔지만 너무 많은 연기를 들이마신 탓인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고 말아.


원이는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가야 했어. 그리고 원이의 나이가 죽은 언니의 나이만큼 먹었음에도 언니를 추억하고 자신의 모습으로 언니를 기념하는 이들로부터 둘러싸여 매 순간 숨 쉬는 것이 언니를 향한 미안함으로 채워갈 수밖에 없었지. 원이를 더 힘들게 했던 이는 장애인이 되면서까지 자신을 살려주었던 '아저씨'의 존재였어. 아저씨는 매년 명절마다 빠짐없이 찾아오고, 돈을 빌려가기를 수차례. 최근에는 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보겠다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기에 바쁘지만 성실함과 끈기는 눈곱만큼도 없는 위인이라 어떤 대단한 걸 해본다 한들 길게 가질 못했어.


쌓여왔던 분노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위태위태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 옥상에서 수현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돼. 학교 옥상에 올라갔다가 느닷없이 만났고 또 엉겁결에 친해진 두 아이는 조금씩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 원이는 자신에게 이러한 짐을 지우게 만들었던 언니와 아저씨를 증오한다는 말을 수현에게 털어놓고 싶어 져. 하지만 그때 수현으로부터 엄청난 고백을 듣게 돼. 자신이 바로 그 아저씨의 딸이라는 거야. 수현이를 통해 '아저씨'가 애초부터 가족들을 힘들게 한 사람이었고,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위인 의식'에 취해 가정을 책임지는 일조차도 등한시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살아남은 아이기에, 두 사람의 희생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두 배로 더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아야만 했던 원이는 더 이상 당연한 감사와 기쁨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해. 참아왔던 마음속 진심들을 하나 둘 전달하며 분노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언니를 받아들이고 아저씨를 용서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하는 거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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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희생에 힘입어 살아남았다면 두 배로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야 해. 한 사람은 목숨을 잃었고, 또 한 사람은 장애인으로 살아야만 한다면 그 두 사람의 몫을 다 감내하며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들 여길 거야.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의 가족은 너무도 감사함이 넘쳐흘러 그 어떠한 것도 내어줄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아니 그래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소설 속 원이는 매년 언니의 죽음 기념하고 기억하는 의례적인 일들이 진절머리 나게 싫었고, 또 매년 그렇게 찾아오는 생명의 은인인 아저씨를 향해 어찌할 바를 몰라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있는 부모님을 보고 있는 것이 미칠 정도로 화가 났어. 당연한 '감사함'의 감정에 반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데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죄책감 속에서 원이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지.


원이가 언니와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살아남은 그 사건에서 '고마운'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거지. 죽어가면서 그리고 다쳐가면서 나를 살려준 것은 너무도 고마운 일이지만 언니의 죽음으로 자신이 언니 몫까지 언니의 기억을 소환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아저씨에게는 장애를 갖게 해서 죄송한 마음이 크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가족들과 자신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버거웠던 거야. 그 모순된 마음을 둘 다 가져가려니 너무도 고독하고 괴로웠는지도 몰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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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가 마음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은 아저씨와 언니를 향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수현에게 인정받았을 때야. 아마 원이는 속으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자신이 나쁜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뇌했을 거야. 분명 나를 살려준 고마운 사람들인데 왜 그들을 향해 모진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는지 말이야.


하지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모순의 감정을 견디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나 양끝의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가깝게는 부모님을 떠올려보면 정말 마냥 좋은 감정만 드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분명 화도 나고 미워지는 마음도 있을 거야. 어떻게 매번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니? 서로 기분 상하는 일도 있고 그것을 참고 견디고 화해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지.


우리가 주인공 원이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될 일은 없겠지만, 원이가 마음속으로 앓았던 감정의 폭풍은 우리에게도 언젠가 찾아올 거야. 그때는 두 가지 마음을 똑같이 인정해주는 게 필요해. 둘 중 어느 쪽도 서운해하지 않도록 말이야. 원이도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과 그리고 부담스럽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았어. 거기까지 나아가는데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 하면서부터 자신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었고, 부담스러운 관계의 끈을 다시 세울 수 있었지.


다시 피타고라스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평면에서는 어떠한 크기라도 참이지만 3차원 곡면으로 넘어가면 공식이 성립하지를 않지. 그렇다면 피타고라스가 말한 직각 삼각형의 정리는 참과 거짓 중에 무엇으로 봐야 할까? 정답은 둘 다. 평면상에서의 피타고라스 정리는 성립하나 곡면으로 가면 성립하지 않는다. 두 가지를 같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단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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