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악기라고 하니 음악 연주가 떠오를 법도 하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삼중주 혹은 기타, 베이스, 드럼의 심플한 밴드를 연상할 만하다. 그러나 내가 이 공간에 싣고 싶은 이야기는 '樂器'가 아니다. '惡期'이다.
인생의 혹한기가 쓰나미로 몰려와 내 현재적 삶을 이렇게까지 할퀼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생각해본 결과, 그건 나와 가족들이 각자 겪는 생애주기적 특성들이 충돌하는 교통사고들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 작년 45세라는 나이에 겪은 폐경으로 비교적 일찍 찾아온 갱년기의 나는 체력도 지력도 감당 안 되는 일들로 버무려지면서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번 아웃된 심신은 '가족을 돌보는 나의 포지션'에서 '나를 돌봐줬으면' 하는, 헛된 희망과 가능성 없는 현실자각에서 겪는 절망으로 가족들을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 첫 번째 악기는 나의 갱년기이다.
내가 거의 리더였던 우리 집에서 남편은 나를 따르는 편이었다. 그간 부부간에 크게 충돌할 것 없이 티키타카가 맞다고 느낀 건, 늘 내가 기획하고 남편이 따라왔던 탓에 서로 부딪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 힘겨워서 움직일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을 때는 나를 좀 리드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남편에게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집안일, 아이 양육, 경제문제는 물론이려니와 물건 사는 것까지 일일이 나한테 물어보는, 외식메뉴까지 내게 결정하게 하는 결정장애, 우유부단의 끝판왕인 남편은 마음의 혹한기를 겪으며 고통스러운 나에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런 사람인 줄 알고 결혼했고, 단점을 포용하며 감수하며 사는 게 사랑이려니 묻어가며 인내해왔다. 이게 터져버린 건 갱년기와 일로 인해 번 아웃된 현재의 내겐 당연했다. 옛날에 어머니들이 애들 때문에 산다는 말이 헛말이 아님에 뼈저리는 답답함. 이로 인해 빚어진 남편과의 권태기가 내 두 번째 악기이다.
세 번째 악기는 큰아들의 사춘기이다. 이건 정말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아들이 크게 속 썩일 일은 하진 않는다 누가봐도 착한 아이이다. 그러나 그간 순종적이던 착한 아들이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말들은 감당이 안 됐다. 처음엔 듣지 않았고, 다음엔 묵살했지만 모두 내가 찌질해지는 결과만 불러일으켰다. 현재는 귓가를 스치며 들리지 않는 말들을 억지로 참아 들어내며 맘에도 없는 사과를 하면서 홀로 이런 상황에 상처받고 있다.
나의 갱년기, 남편과의 권태기, 큰아이의 사춘기는 내 인생의 악귀 같은 기간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세 악기이다. 결혼 전 매우 심한 우울증 환자였던 나였다.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떠났던 결정적 원인이 바로 이 우울증이었다. 멀쩡히 사귀다가도 떠나가는 판에, 내가 우울증 환자였던 걸 알면서도 결혼했던 남편은 사랑의 클라스가 남다르다 느꼈다. 이게 고마워 그의 단점을 감싸주려 했기에 그간의 결혼 생활은 우울증을 치료하기 충분한 행복과 가치를 주었다. 또한 아이들을 키우며 겪는 희로애락의 일상에 우울증이 낄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 우울증 치료제였던 남편과 아이가 다시 내 우울증을 부르고 있었다. 이른 갱년기를 겪으며 '워킹(working)'도 하고 '맘(mom)'도 해야 하는 내게, 나만 쳐다보고 있는 가족들 중 의지처 하나 없다는 외로움은 점점 나를 원래의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과거의 나로 돌이키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쓰려한다. 이 글들을 통해 나를 치료해 보고프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이 내 맘에 무관심하다는 데서 느끼는 상대적 고독감을 이곳에 토로해보고 싶다.
그 첫 번째 시작을 여는 의문은 이것이다. 가족들에게 내가 필요한 건 확실히 알겠다. 그런데 가족들은 나를 사랑하나? 말인즉슨, 나를 필요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내 책임감에 성실한 나는 거기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고 있는가? 보상 없는 노가다를 아내나 엄마라는 굴레로 강요당하고, 내 심신의 노동력을 착취당하느라 내가 번 아웃되고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닐까?
세 악기가 주는 시련이 던지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토론은 다음 여기에.